이재명 대통령이 17일 경기도 성남시 스타트업 스퀘어에서 열린 청년 스타트업 상상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17.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뒤끝 있다. 그런데 투명하다.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처럼 결국은 속을 드러낸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에 대해 15일 “… (중략)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가 언론의 오독이라고 뒤집어씌운 건 ‘바이든-날리면’급 대형 사고였다. 국어국문학 박사인 그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음 날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통령실은) 논의한 바 없고 논의할 계획도 없다”고 수습하긴 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이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서든 임명을 통해서든 권력의 원천은 언제나 국민”이라며 ‘자기가 마치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굳이 언급하고 말았다. ‘조희대 논란’을 인정한 셈이다.
이 대통령이 늘 ‘국민주권’을 강조하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계엄심판·내란종식’을 원하는 국민 지지로 당선됐다. 대선 직후 ‘이재명 투표자들’이 갤럽 조사에서 밝힌 가장 큰 이유(27%)다.
정권교체와 국민의힘 몰락, 그리고 특검 수사와 재판으로 윤석열의 불법 계엄은 이미 국민심판을 받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척결’을 과거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처럼 이 정부 내내 이어갈 태세다.
특히 사법부 장악 시도가 노골적이다.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하더니 갈수록 조 대법원장 사퇴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제발 멈추기 바란다. 베네수엘라와 폴란드, 헝가리 등 멀쩡했던 민주국가가 독재로 빠져든 첫 번째 공식이 사법부 장악이었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에 법치주의는 귀찮은 견제일 터다. 야당을 가볍게 무력화한 뒤 입법과 개헌을 통해 재판관 임면 절차와 과정을 바꾸고 측근으로 채워선 정적을 잡는 정치적 무기로 삼는다. 비공식적 압박이 사법부 독립성 훼손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섬뜩하다. 조작된 증거로 위협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은 법관에게 정치적 이유로 판결했다고 몰아붙이면 반박도 어렵다는 거다. 어제 여당이 출처 모를 녹취록 제보를 들어 조 대법원장의 특검 수사를 촉구한 게 좋은 예다.
사법부 장악을 멈춰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이 대통령의 권력서열론 때문이다. 11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은 국민주권이고 다음이 직접 선출권력, 간접 선출권력”이라며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국가권력기관은 선거에 의해 구성된 전국인민대표대회 통제 아래 존재하므로 최고인민법원 역시 그 감독 아래 활동하는 중국사회주의 민주집중제와 맥락이 비슷하다는 언급은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60% 지지층 가운데 넷 중 하나는 대선 뒤 새롭게 지지하게 된 ‘뉴 이재명’이라는 점은 알았으면 한다. 중도층에서 넘어온 이들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에 희망을 갖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사법부 장악으로 내달리면 ‘뉴 이재명’은 진짜 실용인 줄 알았다며 돌아설 공산이 크다.
세 번째 이유는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 때문이다. 이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가장 큰 이유로 ‘사법리스크·범죄 혐의’를 들었다(갤럽조사 30%). 대통령의 재판 5개가 알아서 기듯 멈춘 상태다. 대통령 자신의 재판을 막으려고 임기가 보장된 대법원장을 끌어내린다면, 국힘 주장대로 탄핵 사유도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 망신이다.
지난 5월 대법원의 파기 환송에 반발한 민주당이 대법원장을 탄핵하겠다며 펄펄 뛰자 이 대통령은 “당이 국민 뜻에 맞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나도 국민이다. 그러나 누구도 내 뜻을 묻지 않았다. 기실 이 대통령은 국민 뜻이 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자기 뜻과 같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총통 의지가 곧 국민 의지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던 독일 나치시대 법이론가 오토 쾰로이터를 연상케 한다. 1942년 4월 26일 히틀러는 독일제국의 최고재판관(oberster Gerichtsherr)으로 추대돼 국민의 수호자이자 곧 법이 됐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모두가 안다.
사법리스크가 없더라도 대통령에게 매일의 국정운영은 국민참여재판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주권자 국민’은 개딸만이 아니어야 한다. 말은 줄이고 성과로 드러내면, 더 많은 동료시민이 일상 속에서 판결한다. 그리하여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하면 사법리스크도 남아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사법부 장악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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