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美中 AI 모델 활용하자는 의견 있지만
AI는 전략자산, 해외 의존하면 위기에 취약
독자 AI 확보 목표로 민관 역량 총집결할 때
범부처 진용 및 대규모 예산 바탕 성과 낼 것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가난한 나라가 세계에 수출할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해외에선 알아듣지 못할 생소한 언어와 노래로 미국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이들의 성공을 예측한 이는 몇이나 있었을까. 지금 이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점유율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고, 세계가 열광하는 K팝의 창시자가 됐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은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엄청난 투자로 이미 앞서가고 있는 미국, 중국과 경쟁할 수 있겠느냐고. 우리는 그들이 개발해 놓은 AI를 잘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필자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 당시,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우리 반도체 산업이 흔들렸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AI가 산업과 공공 영역을 망라한 모든 분야에서 기업 활동의 핵심 기술이자 국가 전략자산으로 자리 잡은 오늘, 만약 우리가 해외 AI에만 의존하다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면 이는 곧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독자 AI 확보는 국가와 기업의 생존 전략이 됐다.
비록 미국, 중국과의 격차가 크긴 하지만 우리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최근 세계 AI 모델을 평가한 지표에서 우리 모델이 11위와 14위를 차지하는 등 희망적인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속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지금의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성공 경험이 있다.
이제 우리는 독자 AI 확보를 위해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우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독자 AI는 우리만의 폐쇄적 AI가 아닌 글로벌 최고 수준의 AI 모델이자 생태계가 돼야 한다. 우리 AI가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도 선택받을 만큼의 경쟁력과 보편성을 갖추고, 국민과 세계인 모두가 그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간과 정부의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2030년까지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장을 확보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2028년까지로 앞당기는 것을 넘어, 민관 협력을 통해 2030년까지 최소 20만 장의 GPU를 확보하고자 한다. 독자 AI 개발과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와 네트워크 등 핵심 인프라도 조속히 구축해 ‘AI 고속도로’를 완성할 계획이다.
AI 고속도로 위에서 개발된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AI 모델은 산업 현장 곳곳에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제조업에서는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 효율을 높이며, 의료에서는 개인 맞춤형 진단을 넘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기여할 것이다. 금융·물류에서도 AI는 서비스 품질을 혁신하고,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극대화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이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이 독자 AI의 혜택이 특정 기업이나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학생, 중소기업, 취약계층까지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포용적 AI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정부는 AI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국민의 AI 역량 향상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재난, 복지, 치안 등의 영역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해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삶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AI 기본사회’를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하도록 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이는 격화되는 기술패권 경쟁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AI를 비롯한 첨단 전략기술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정책 의지가 담긴 결정이다. 필자 또한 이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신설, 국가AI전략위원회 출범에 이어 범부처 AI·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 체제로 정부의 AI 정책 추진체계와 진용이 본격적으로 갖춰졌다. 준비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모든 정부 부처와 민간의 역량을 모아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35조3000억 원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과 올해 대비 3배 확대된 10조1000억 원의 AI 예산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 과학기술 5대 강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과거 무모해 보였던 도전이 지금의 제조, 문화,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을 이끌었듯, 지금 우리의 과감한 도전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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