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스마트폰 중독’ 벗어나기, 수업 중 금지법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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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가 22일 서울 강동구 고덕센트럴아이파크 커뮤니티에서 주민들과 스마트폰 중독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가 22일 서울 강동구 고덕센트럴아이파크 커뮤니티에서 주민들과 스마트폰 중독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제 군대도 스마트폰 청정 지역이 아니에요. 오히려 군인 월급으로 인터넷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가 22일 서울 강동구 고덕센트럴아이파크 커뮤니티에서 열린 주민건강강좌에서 던진 말은 부모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계보건기구(WHO) 행위중독대응 자문위원이자 국내 중독 전문가인 이 교수는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무료 건강 강좌를 시작했다.

젊은 연령대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가운데 ‘군대에 가면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모 기대와 달리 군대마저도 청정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울증 환자만 정신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많은 중독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40.1%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강압적으로 통제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교수는 강압적 통제 대신 ‘함께 규칙 만들기’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의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자녀 의견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소통하는 건강한 양육 방식이 자녀 성장에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폰 사용 지도 시 부모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대신, 자녀와 함께 스마트폰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대화하며 규칙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아이 자기 조절 능력과 비판적인 생각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전반의 변화도 필요하다. 정부가 부모를 위한 디지털 부모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부모들이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소쿠리 캠페인’처럼 오후 11시 이후 온 가족이 스마트폰을 바구니에 넣는 규칙을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도서관이나 공원에 ‘스마트폰 프리존(Free Zone)’을 확대해 청소년들이 디지털 기기 없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학교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문제 해결의 시작에 불과하다. 사단법인 중독포럼은 이 법에 대해 “교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넘어 청소년 건강까지 고려한 전 사회적 지원책이 마련되길 촉구한다”는 성명을 최근 발표했다. 단순한 금지에서 나아가, 학생들이 스스로 사용 습관을 점검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디지털 자율성 교육을 정규 교과에 편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 쉬는 시간 스마트폰 대신 보드게임이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쉼’ 공간을 만들고, 자기 조절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캠페인으로 긍정적인 또래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모든 노력이 개인과 가정에만 전가되어선 안 된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콘텐츠 플랫폼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끊임없는 알림 등은 모두 사용자 관심을 끌어 돈을 버는 관심 끌기 산업 전략이며 이는 청소년 과의존을 부추기는 핵심 요인이다.

청소년 과의존을 유발하는 기능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청소년 보호 기술 설계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기기를 처음 켤 때 보호 기능이 기본 설정되는 ‘청소년 보호 모드’를 탑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보기술(IT) 기업 매출의 일부를 ‘디지털 건강 기금’으로 조성해 청소년 과의존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회와 가정이 파괴되는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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