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밤 국회의사당 내 수소충전소 인근에 백팩을 멘 방첩사 부대원 49명이 출동했다. 가방 안에는 방검복, 수갑, 포승줄, 장갑, 삼단봉 같은 장비들이 들어 있었다. 이들 ‘체포조’의 임무는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등 10여 명을 검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물급 정치인들을 대거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방첩사 부대원들 사이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체포 작전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계엄 선포 직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체포 대상자 명단을 통보했고, 여 전 사령관은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이번 기회에 싹 잡아들여”라며 방첩사를 도우라고 지시했다. 여 전 사령관은 홍 전 차장에게 ‘체포 대상자들의 소재 파악이 안 된다’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이들을 검거하면 포승줄로 묶거나 수갑을 채워 수방사 B1 벙커로 이송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정작 체포조의 핵심인 방첩사 부대원 일부는 만취 상태였다. 25일 윤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방첩사 최모 소령은 계엄 당일 저녁 부대원들과 회식하면서 “(소주를) 각 한 병 이상 마셨다”고 진술했다. 오후 9시경 회식이 끝나고 관사에 있을 때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최 소령은 급히 사령부로 갔다. 최 소령은 “(정식 작전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다들 술 냄새가 났다”고 기억했다. 공판에 출석한 다른 방첩사 간부도 ‘당시 방첩사 수사관 다수가 음주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상태였다는 게 맞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최 소령에게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우선 체포 대상이었다. 느닷없이 체포조가 된 방첩사 부대원들은 “이게 맞냐” “(체포영장 등) 근거 없이 나가면 안 된다”며 망설였다고 한다. 이들이 출동 과정에서 시간을 끈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필요한 물품을 최대한 천천히 챙겼고, 국회를 700m 정도 앞둔 지점에서 일부러 차량에서 내린 뒤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기도 했다.
▷계엄이 선포된 지 약 2시간 반 만에 국회에서 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되면서 체포가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최 소령은 체포 작전 당시 “혼란스럽고, 무질서했고, 무기력했고, 무서웠다”고 전했다. 이런 상태에서 술까지 마신 방첩사 부대원들이 체포에 실제 투입됐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체포 대상자들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했을 수 있고, 국회 주변에 다수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던 만큼 폭력 사태로 번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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