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과 노조법2조 당사자들이 하청노동자 교섭권 무력화 및 원청책임 면죄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24 서울=뉴시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의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 사업주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절차를 규정한 시행령 개정안을 정부가 24일 입법 예고했다. 현행 노조법상 하나의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 있으면 대표노조를 정해 교섭해야 하는데, 하청 노조의 경우 원청 노조와 별도로 교섭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비슷한 하청 노조끼리 묶으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대기업의 경우 수십, 수백 개의 교섭 대상이 새로 생겨 1년 내내 노사 교섭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청 기업과 다수의 하청 노조 간 자율 교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정부기구인 노동위원회가 하청 노조의 근로 조건, 이해 관계 등을 따져 하청 기업 노조들을 별도의 교섭 단위로 만들 수 있다. 개별 노조별로 만들 수도 있고, 직무·노동 조건이 유사한 하청 노조끼리 묶을 수도 있다. 노동부는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면서도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는 안”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행 노조법의 예외 규정인 ‘교섭 단위 분리’가 폭넓게 허용되면서 기업이 상대해야 할 노조가 크게 늘어나게 됐다는 점이다. 교섭 단위를 정할 때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당사자 의사 등까지 고려하도록 한 점이 그렇다. 노조마다 개별 협상을 요구하면 교섭 단위가 더 잘게 쪼개질 수 있다. 자동차·조선·건설 등 협력업체가 많은 업종은 한 사업장에서만 수십 개의 교섭 단위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 원청의 소수 노조도 별도 교섭을 요구하는데, 교섭 주도권을 둘러싼 노조 간 갈등과 경쟁까지 생긴다면 혼란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자율적으로 진행돼야 할 노사 관계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개별 기업별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하고 교섭 단위를 어떻게 쪼갤지 등을 노동위가 일일이 판단해 주는 구조다 보니 노사 관계는 사라지고 노정 관계만 남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교섭 과정의 분쟁을 대비해 ‘사용자성 판단 지원 위원회’를 신설할 방침인데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위원회의 판단을 노사가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내년 3월 법 시행 이전에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교섭 주체가 급증해 갈등에 빠지지 않도록 교섭 단위를 정하는 기준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여전히 애매한 사용자성 판단 기준, 교섭 의무 범위, 노동쟁의 대상 범위 등도 분명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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