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다는 가발 벗어 던졌는데… 항암치료 부작용은 견뎌야 할 고통?[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동아일보
입력 2025-12-16 22:522025년 12월 16일 2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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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서 방치되는 뇌질환
항암 부작용 중 뇌질환 안 드러나… 인지 저하-구토-보행 장애 유발
치료 이후 뇌 회복에 수년 걸려도 진단 어려워 참고 넘기는 일 많아
항암 중 ‘견뎌야 할 부작용’에서 ‘관리 가능한 문제’로
최근 유방암 투병으로 항암 치료 사실 알린 방송인 박미선. 사진 출처 tvN
《미드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사만다는 늘 자신 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다.
어느 날 사만다는 유방암을 진단받게 된다.
그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특유의 자신감으로 유능한 유방암 전문의를 찾고, 다행히 초기 암이라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는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탈모를 포함한 여러 부작용을 겪게 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사만다는 유방암 환자들을 돕기 위한 모임에서 연설을 하게 되는데 조명의 열기로 가발 안에 끝없이 땀이 차오른다. 열기를 못 참은 그는 가발을 벗어 던지고는 준비한 정제된 원고를 읽는 대신에 항암치료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이에 청중석의 환자들도 똑같이 가발을 벗어 던지며 기립박수로 환호를 보낸다.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암은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질병이다. 운이 좋아 일찍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치료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많은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항암치료의 기본 목표는 암세포를 없애는 것이지만 암세포를 죽이면서 다른 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치료제는 아직 없다.
탈모는 눈에 띄는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또 다른 부작용으로는 뇌 질환이 있다. 항암으로 생길 수 있는 뇌 질환에는 대표적으로 ‘항암 뇌’라고 부르는 인지기능 저하가 있다. 기억력이 감퇴하고 집중력이 줄어들며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항암치료의 또 다른 대표적 부작용인 피로도 무기력함과 인지 저하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항암제가 뇌의 구토 중추(연수 부위)를 자극해 메스꺼움과 구토를 유발하기도 한다. 항암치료는 말초신경병증, 즉 손발 저림, 찌릿함,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화끈거림, 감각 둔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균형감각 저하, 물건 잡기의 어려움, 보행 시 발바닥이 붕 뜬 느낌과 같은 운동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항암치료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로는 현재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첫째, 항암제가 직접적으로 뇌의 신경세포나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인지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둘째, 항암치료로 인한 장내 미생물 균형 변화가 장-뇌 축을 통해 뇌에 영향을 미쳐 인지 및 행동 변화를 유발한다고 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후 발생하는 뇌의 염증 반응이 인지기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항암 뇌는 대부분 일시적이지만 회복에 몇 개월이나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며, 회복을 돕기 위해 인지 훈련이나 운동 등이 시도된다. 오심, 구토, 피로 등은 항암제와 병행해 투여되는 약물로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뇌 관련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적인 경우에는 대책을 찾기 어렵다. 아직까지는 정확한 원인에 대한 진단과 치료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암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뇌에 관한 많은 이상 증상은 치료 과정 속에서 무조건 견뎌야 하는 일로 여겨지기 쉽다. 즉, 암이라는 엄청난 질병을 이겨내야 한다는 궁극의 목표로 인해 다른 문제들은 경시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사자가 나타나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는데, 기억력이 좀 이상해지거나 팔다리가 저리고 구토나 어지럼증이 있다고 해서 뛰는 것을 멈출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미드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유방암 항암 치료 과정에서 탈모를 겪고 있는 사만다가 연설 도중 땀에 찬 가발을 벗어던지는 모습. 사진 출처 HBO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증상을 무시한다면, 특히 장기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더 오랜 기간 방치된 채 항암 약물에 계속 노출된다면, 암을 극복하고 난 뒤 뇌 질환이라는 또 다른 큰 장애물을 마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치료 과정에서 아무리 사자가 쫓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의 큰 고통을 겪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뇌 관련 이상 증상들에 특별히 신경 쓰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사실상 뇌 질환 자체가 진단과 치료를 하기에 기술적으로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한 검사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고 치료도 간단했다면, 모든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뇌의 문제를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이제는 빠르고 쉽게 가능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항암치료라는 어려운 과정 중에 뇌의 기능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항암치료 후에도 뇌 기능에 이상 없이 생존할 수 있는 희망, 그리고 치료 과정에서의 고통도 줄일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암을 이겨 나가는 과정이 기억력 상실이나 통증과 같은 힘든 증상들을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하는 외로운 과정이 아닐 수 있다. 그 대신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관리함으로써 뇌의 건강을 지켜가는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만다가 땀 찬 가발을 견디다 못해 벗어 던지며 일종의 자유를 찾았듯이, 뇌 안의 문제들도 함께 날려 버리며 암을 이겨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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