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모르겠다” “대책 없다” 의외의 발언
정책 의도와 다른 결과에 대한 고민일 것
‘생중계 업무보고’에선 180도 다른 모습
‘내가 뭘 모르는지’ 돌아보는 모습 기대
박중현 논설위원
“압박도 해보고, 겁도 줘보고, 수사도 해보고 하는데 대형 사업장은 줄었지만 소형 사업장은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4일 청와대 영빈관 산업역군 오찬 간담회) “제가 서울과 수도권 집값 때문에 요새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대책이 없다. 구조적 요인이라 있는 지혜, 없는 지혜 다 짜내고 주변의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5일 충남 천안시 타운홀 미팅)
이달 초 전혀 ‘이재명스럽지’ 않은 대통령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중대재해 관련 발언은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주가를 폭락하게 해야 한다”며 비판을 쏟아내던 날 선 모습과 많이 다르다. 즉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피할 때를 제외하고, 이 대통령이 특정 정책 사안에 대해 “모르겠다”고 하는 건 이례적이다.
집값을 놓고 “대책이 없다”고 한 데에는 참모진이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보다 긴 시간 동안 국토 균형발전을 이뤄야 된다는 취지로 이해해 달라.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정책적 준비는 다 돼 있다”고 굳이 부연설명을 했다. ‘유능함’, ‘효능감’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대통령은 평생 입에 담지 않을 것 같던 표현이 갑자기 나온 탓일 게다.
현 정부는 취임 후 반년간 노동·증시·부동산 등 모든 분야에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도 높은 정책을 많이, 급하게 쏟아냈다. 그런 만큼 다른 정부라면 임기 중반쯤 돼서 나올 ‘우리 해법이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 또는 깨달음의 순간이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반길 일이겠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달러당 1470원을 오르내리는 고환율과 관련해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투자를 문제 삼은 당국의 태도가 그렇다. 2022년 코로나19 발생 후 글로벌 증시가 급락했을 때 한국 증시에 투자한 이들이 동학개미, 해외에 투자한 이들은 서학개미다. 투자처에 따라 편의상 다르게 불릴 뿐 실제 대다수 투자자는 동학개미인 동시에 서학개미다. 특히 청년 투자자 중에는 한국 주식보다 해외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더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코스피 5,000’을 목표로 정부가 증시를 띄우면 국내 투자뿐 아니라 해외 투자도 동시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도 상승(원화가치는 하락) 압력이 커지는 게 당연하다. 청년 시절 ‘꽤 큰 개미’였다 해도, 주로 국내에만 투자했을 이 대통령은 서학개미들의 예전과 달라진 투자 패턴, 이들의 투자가 환율에 미칠 영향까진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대일 쌀 수출 검토를 채근한 장면도 농업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이 봤을 땐 마음이 복잡해진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서 시끄럽다. 일본에서 쌀값이 3배나 폭등했다는 거 아니냐. 일본하고 협의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또 “(일본인) 관광객들도 사가지 않나. 한번 검토해 달라”고도 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일시적 생산 감소 영향이 있지만, 일본 ‘쌀 소동’은 과잉 생산된 쌀을 비축해 놓고도 핵심 지지층인 농민을 의식해 높은 쌀값을 유지하려고 정부와 여당이 쌀을 제때 풀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창고에 쌀이 쌓이는데도, 평년보다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매입해 쌀값을 떠받치도록 ‘양곡법’을 고친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일본도 우리처럼 일부 쿼터를 제외한 수입쌀에 고관세를 매기는데, 일본 쌀값이 3배로 뛰어 정점을 찍었던 때 정도가 아니면 한국 쌀은 가격 경쟁력이 거의 없다.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쌀을 사가는 건 개인 휴대 소량 포장 쌀은 관세를 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진행된 정부부처·공공기관 ‘생중계 업무보고’는 더 난감하다. 대통령은 세관 업무인 ‘책갈피 달러 반출’을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따지고, 정사(正史)를 다루는 동북아역사재단에 20세기 위서 ‘환단고기’ 연구를 안 하느냐고 캐물었다. 공직사회에 대한 독려는 필요한 일이고, 정부의 모든 일을 대통령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얕은 지식에 기초한 돌발 질문으로 카메라 앞에서 공직자들을 질책하는 건 대통령 권위에 흠집을 낼 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不知知)’을 병이라 하고, ‘알지 못한다는 걸 아는 것’, 지부지(知不知)를 현명한 인간이 지향할 덕목으로 꼽았다. “저보다 모르네요”라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모습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자문하고, 잘못 알았던 걸 스스로 바로잡는 대통령을 국민은 더 자주 보고 싶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