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다시 쉬는 제헌절… 공휴일도 시대 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30일 23시 18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됐던 1948년 7월 17일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올해 제헌절은 마침 금요일이라 3일간 쉬는 ‘황금 주말’이 늘었다. 제헌절은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이었지만 유일하게 쉬는 날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공휴일로 재지정하자는 법안이 이미 여럿 발의돼 있었고 12·3 비상계엄 이후 헌법 정신이 강조되면서 공휴일법이 29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공휴일이 그 지위를 빼앗긴 건 근로 시간 단축 제도의 도입 과정과 관련이 깊다. 2004년 도입된 주 5일제는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그래도 저항이 컸다. 기업들은 생산성 손실과 비용 부담을 호소했고 정부는 ‘당근책’으로 공휴일 축소를 추진했다. 2006년 식목일(4월 5일), 2008년 제헌절이 차례로 공휴일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근로 일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법정 공휴일도 줄어드는 일종의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이보다 앞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10월 1일)과 한글날(10월 9일)은 토요일 반나절만 근무하는 주 5.5일제 시행의 여파였다. 10월의 방학이라 불렸던 ‘퐁당퐁당’ 공휴일부터 퇴출당했다. 당시 이를 논의했던 국무회의 브리핑을 보니 “사회가 너무 노는 분위기로 가는 것은 문제”라며 “공휴일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국무위원의 정제된 발언 수위가 이랬으니 사회적으로 얼마나 근면, 성실이 강조되던 분위기였을지 짐작이 간다.

▷공휴일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쉬라고 하는 날이니 시대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유엔의 날(10월 24일)은 6·25전쟁에 참여했던 유엔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공휴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 등 유엔 산하 기구에 줄줄이 가입하자 정부가 그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공휴일 지정을 취소했다. 남북 경쟁이 쉬는 날을 갑자기 일하는 날로 만들었다. 1999년부터는 1월 2일이 신정 연휴에서 제외됐다. 양력설을 권장했으나 여전히 음력설을 고수하는 사람이 많자 휴일을 축소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 극복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제헌절이 추가되면서 올해 연간 법정 공휴일(대체 휴일 포함)은 22일까지 늘어났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하면 모두 119일, 일 년의 약 3분의 1을 쉬는 셈이다. 현재 주 4.5일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공휴일을 축소하자는 목소리가 벌써 나왔을 법도 한데 잠잠하다. 키오스크부터 휴머노이드까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이 등장해 노동력 투입이 곧 생산성과 직결되지 않는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제헌절에 출근하던 18년 동안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다.

#제헌절#공휴일#주 5일제#근로시간 단축#국경일#대체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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