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전체 공공기관장 344명 가운데 이미 임명됐거나 임명을 기다리는 인사가 5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달 4일 이후 임명된 기관장만 해도 16명이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은 “알박기 인사를 대청소해야 한다”며 상설특검, 헌법소원 등을 벼르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물러가는 정부의 공공기관장 알박기, 그에 따른 새 정부의 인위적 물갈이 등 이른바 ‘블랙리스트’ 소동이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
민주당은 이들 공공기관장의 버티기가 이어질 경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고, 임명 과정을 조사하는 상설특검을 하겠다고 한다. 당내 강경파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이뤄진 임명은 무효라는 헌법소원까지 검토 중이다. 또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토록 하거나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등의 법안도 발의했다. 조국당도 대통령이 파면된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이 공공기관장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입법에 나섰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노골적인 공공기관장 나눠 먹기가 이뤄진 것도, 특정 공공기관장을 몰아내기 위한 법이 우르르 발의된 것도 정상적 상황으로 볼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공공기관장 임명을 두고 충돌이 반복됐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임명된 공공기관장 사퇴를 공공연히 압박했고, 박근혜 정부는 경영평가를 내세워 전 정부 인사를 솎아내 논란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선 환경부가 산하 기관장 사퇴를 종용했다가 장관이 형사처벌을 받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이 파면되고 새 정부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알박기’ 인사가 이뤄지면서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정부를 거치며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데도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고 사법 처리로 이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공기관장은 합당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임명돼야 하지만 이를 보은성으로 내 편에게 나눠주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든, 대통령 임명직을 정리한 한국판 ‘플럼북’을 도입하든 제도적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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