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명의료 중단 서약 300만 명… 품위 있는 죽음 원하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0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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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 시행으로 관련 제도가 도입된 지 7년 6개월 만에 전체 성인 인구의 6.8%, 65세 이상 고령자의 21%가 연명의료 중단 의향서에 서명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에 이르는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 행위를 뜻한다.

연명의료 거부자가 증가하는 추세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말기나 임종기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92%였다. 고통이 심한 말기 환자에 한해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스스로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조력 존엄사’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도 82%였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고, 가족에게 부담이 되기 싫으며,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 가운데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람은 12.7%에 불과했다(2023년 기준).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면서도 못 하는 이유는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기 환자만 가능하다. 말기 환자, 뇌출혈로 식물 상태가 된 환자, 중증 치매 환자는 미리 거부 의사를 밝혔어도 임종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은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해 홀몸노인이나 무연고자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하는 실정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한국보다 앞서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도입한 선진국들은 임종 직전의 환자뿐만 아니라 말기나 식물 상태 환자들에게도 연명의료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 제도가 생을 쉽게 포기하게 하는 사회적 압력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은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 건강하게 사는 것 못지않게 품위 있게 죽을 수 있어야 삶의 질도 높아진다.


#연명의료#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존엄사법#고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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