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7일 내놓은 ‘선관위 인력 관리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카의 채용을 청탁한 의혹을 받던 광주 동구 선관위 사무국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선관위 직원들이 채용공고도 내지 않고 가족을 특혜 채용한 것이 범죄가 아닌 정당한 관행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선관위 고위직 간부들의 가족 채용 특혜 논란으로 시작된 감사원 조사에선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 관행이 만연했음이 드러났다. 선관위 고위직 뿐만이 아니라 지역 선관위의 국과장급 직원들까지도 스스럼 없이 자녀의 채용을 동료에게 청탁했다는 것. 또 직원들은 선관위 동료직원 자녀에 특혜를 주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거나, 경쟁 후보자를 부당하게 탈락시키면서까지 부정 채용에 가담했다.
● 자녀 채용 위해 짬짜미 힌 선관위
보고서에 따르면 따르면 지역 시군구에서 일하는 공무원 자녀를 선관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경력 채용’이 부정채용의 핵심 통로가 됐다. 경남선관위의 과장급 직원 B 씨는 의령군에서 일하던 자녀가 선관위 경력공채에 응시하자 인사 담당자인 동료에게 “맞게 냈는지 봐달라”며 자녀의 지원서를 건넸다. 인사 담당자는 면접 시험을 마친 뒤 B 씨 자녀를 비롯한 5명의 이름이 적힌 ‘내정자 리스트’를 부하 직원에게 전달했다. 리스트를 받은 직원은 이들이 합격할 수 있도록 면접시험 점수가 적혀 있는 엑셀파일을 조작했다. B 씨는 자녀 채용을 도운 동료들에게 벌꿀 두 통을 건넸다.
직원 자녀들을 특혜 채용하기 위해 멀쩡한 합격자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충북선관위는 2018년 단양군의 공무원을 경력채용 대상으로 추천받고도 “만 37세라서 나이가 너무 많다”면서 추천을 거절했다. 이 자리엔 충북선관위 고위 간부의 딸을 공고도 내지 않고 채용했다.
경북선관위의 한 계장급 직원은 2021년 경력채용을 진행하면서 전직 선관위 직원의 자녀가 응시요건에 미달하자 채용 대상 직급을 조정해 합격시켰다. 반대로 점수가 높은 경쟁자에 대해선 “응시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채용할 수가 없다”고 허위 정보를 퍼뜨려 불합격 시켰다. 노골적인 부정 채용이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선관위가 관련 투서를 접수하고도 지역 선관위의 경력 채용 과정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의 인사담당 직원은 2021년 9월 경남선관위 과장의 자녀가 특혜채용됐다는 투서를 접수했지만 관련자를 조사도 하지 않고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사원에 따르면 중앙선관위와 시도선관위의 인사 담당 직원들은 업무용 메신저로 “간부들이 호시탐탐 자녀를 데려오려고 노리고 있다”, “법령을 어긴 것이지만 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쩔 수 없다”, “상임위원이 경력공채에 자기 딸을 밀어넣으려 하는데 비밀로 해달라”는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 불법 내부 규정 만들어 고위직 나누기도
선관위가 ‘1급 자리’인 시도선관위 상임위원 임기를 멋대로 조정한 사실도 확인됐다. 각 지역 선관위 상임위원의 임기는 법에 6년으로 정해져 있고 정년도 60세로 보장돼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내부 규정을 만들어 지역 선관위 상임위원의 임기를 2년으로 줄였다. 또 상임위원들을 지명할 때 “59세에 퇴직한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임기를 줄여 여러 명이 고위직을 맡을 수 있게 하려 한 것.
선관위는 또 교수나 법조인도 임명될 수 있는 시도선관위 상임위원에 대해선 ‘4급 이상 공무원 중 선거사무에 7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라는 내부 규정을 만들어 사실상 내부 인사들만 채용될 수 있게 했다. 선관위가 기획재정부와 예산 협의도 하지 않고 2004년부터 1급 4자리를 만들어 운영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선관위가 고위직인 1급 자리를 여러 명이 ‘나눠먹기’ 위해 식으로 운영했다고 판단하고 법률 취지에 맞는 보직 운영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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