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세습 채용’
지원-면접에 전출동의도 ‘아빠 찬스’… 채용공고 前 담당자 찾아 청탁도
지원 서류만 봐도 가족관계 파악
특혜채용 드러난 10명 여전히 근무… 선관위 “후속 조치 검토하겠다”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뉴스1
“와서 차 한잔하지? 어떻게 갑자기 지원하게 됐어?”
2019년 11월 충북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 옥천군 공무원 A 씨가 경력채용 원서를 내러 가자 채용을 총괄하던 담당 과장 B 씨는 이같이 말하며 A 씨를 따로 불러 커피를 마셨다. B 씨는 충북 지역 선관위에서 일하던 A 씨 아버지의 동기였다. 다른 응시자들이 원서 접수를 마친 뒤 면담 없이 돌아간 것과는 확연히 다른 대우였다.
지역 시도 선거관리위원회 간부의 자녀들이 경력 채용 원서를 제출할 때부터 ‘아빠 친구’인 선관위 직원들로부터 특혜를 받아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지역 선관위 직원들은 길게는 수십 년간 한 지역에서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서로 가족관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채용 특혜가 발생할 위험이 큰데도 중앙선관위는 시도 선관위의 채용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아빠 찬스’에서 ‘삼촌 찬스’까지
4일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A 씨 아버지는 충북선관위 경력 채용이 진행되던 2019년 11월 동기인 B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의 소속 기관인 옥천군에서 선관위 전출을 동의해주지 않는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B 과장은 옥천군선관위의 부하 직원을 시켜 “군수를 만나 전출 동의를 받아오라”고 지시했고 옥천군수는 A 씨의 전출에 동의해줬다. 면접에는 B 과장이 면접위원으로 들어갔고, A 씨는 최종 합격했다.
선관위 직원들이 내부망을 통해 경력 채용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서슴없이 담당자를 찾아가 자녀나 조카 등의 채용을 청탁한 사례도 확인됐다. 경남선관위 과장은 2021년 6월 경력 채용 실시 안건이 논의되자마자 담당 계장을 빈 사무실로 데려가 자신의 딸이 채용에 지원할 것이라고 알렸다. 중앙선관위의 한 직원도 2021년 내부망에 경력 채용 예정 문서가 게시되자마자 문서를 작성한 담당자를 찾아가 “보성군에서 일하는 조카가 선관위 전입을 갈망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딸과 조카는 모두 채용됐다.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했던 지역 선관위 관계자들이 지원 서류만 보고 응시자의 가족관계를 파악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아들이 경력 채용 응시 원서를 냈을 때 당시 강화군선관위와 인천선관위의 담당자들은 대부분 김 전 사무총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김 전 사무총장은 물론이고 배우자와 자녀, 며느리도 모두 강화군 공무원 출신이라 이미 지역 선관위나 강화군 내부에서 김 전 총장 가족의 신상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관위 담당자가 한 지원자의 응시 원서를 보고 고위직 자녀라는 사실을 파악해 이를 채용 담당 계장 등에게 알려 특혜를 준 사례도 있었다.
● ‘특혜 채용’ 10명 그대로 근무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은 공무원임용시험령에 따라 공무원을 경력 채용할 때 최종합격자 발표 전 채용점검위원회를 꾸려 채용 과정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점검한다. 하지만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채용 점검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는 감사원의 요구에 따라 2020년부터 중앙선관위 경력 채용에서 ‘채용점검’ 절차를 실시했지만 각 시도 선관위의 경력 채용은 아예 점검하지 않았다.
한편 특혜 채용 문제가 불거진 김 전 사무총장 아들을 비롯한 10명은 여전히 선관위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5명은 2023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논란이 일자 직무배제 조치됐지만 지난해 1월 22대 총선 업무 등을 이유로 업무에 복귀했다. 선관위는 재직 중인 특혜 채용 대상자 10명에 대한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선관위는 이날 “지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력경쟁 채용제도는 현재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실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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