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2025.2.25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5일에도 평의를 열고 선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헌재가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쟁점 중 하나는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지시’ 의혹이다. 윤 대통령이 여야 정치인 등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비상계엄 때도 국회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규정한 헌법 77조 등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가 된다.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은 체포 지시가 있었는지를 두고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 치열하게 다퉈 왔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체포 명단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명단을 불러준 것으로 파악했다. 법조계가 여 전 사령관을 체포 지시 의혹의 ‘키맨’으로 지목하는 이유다.
● 여인형 “체포 명단 들어”, 조지호 “체포 닦달”
여 전 사령관은 지난달 4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출석했으나 형사재판을 이유로 대부분의 증언을 거부했다. 하지만 수사기관 피의자 조사에선 ‘체포 지시’와 ‘체포 대상자 명단’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피의자 신문조서에 따르면 여 전 사령관은 “홍장원 씨가 저에게 ‘뭐 도와줄 것이 없냐’고 얘기했다. 그래서 제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님이 명단 말씀해주신 것을 말했고, 어디 있는지 위치 확인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으로부터 체포 명단을 들었고, 이를 홍 전 차장에게 전하며 주요 인사의 위치 추적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의 진술은 지난해 12월 검찰이 방첩사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증거(메모)와도 일치한다. 이 메모는 여 전 사령관이 김대우 수사단장에게 14명의 체포 명단을 불러준 것을 김 단장이 구모 수사조정과장에게 그대로 불러주면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차장이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들어 작성했다는 체포 명단과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조 청장의 진술도 검찰 수사 결과를 뒷받침한다. 조 청장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1시 30분경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3분경까지 윤 대통령으로부터 총 6회의 전화를 받았고, “6통의 전화 모두 결론적으로 국회의원 체포를 닦달하는 내용이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또 여 전 사령관이 첫 통화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15명을 불러줬고 두 번째 통화에서 “한동훈 추가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20일 탄핵심판 10차 변론에서 대부분의 증언을 거부하면서도 ‘조사받을 때 사실대로 진술·열람한 뒤 서명했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가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을 증거로 채택한 만큼 이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홍장원 메모’ 배제해도 다수 증거로 판단할 듯
핵심 물증으로 꼽혔던 이른바 ‘홍장원 메모’는 신빙성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홍 전 차장은 국회와 헌재에서 “(윤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이고, 국정원에 대공수사권 줄 테니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작성했다는 체포 명단 메모도 검찰과 헌재에 제출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간첩 검거와 관련된 격려 전화였다”며 체포 지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히 조태용 국정원장이 “홍장원 메모가 4개 버전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윤 대통령 측은 “메모의 신빙성이 떨어져 증거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홍 전 차장의 메모와 일부 증언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헌재는 여 전 사령관과 조 청장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다른 증거와 비교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인사는 “탄핵심판은 혐의나 사실관계를 세세하게 따지는 형사재판과 다르다”며 “여러 증거를 종합한 뒤 본질 쟁점인 ‘정치인 체포 지시’가 있었는지, 그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동향 파악’ 시도는 있었다는 점과 이것이 위법했다는 점을 인정한 부분 역시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10차 변론에서 “지난해 12월 4일 여 전 사령관이 조 청장에게 위치 확인 혹은 체포를 부탁했다는 기사를 보고 김 전 장관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며 “(김 전 장관이) ‘동향 파악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경찰에선 딱 잘랐다’고 이야기해 저도 불필요했고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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