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중구 숭의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제10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5.03.01 서울=뉴시스
상속세 개편을 두고 정치권의 감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여야의 정책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6일 국민의힘은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와 유산취득세 도입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상속세 면제 기준을 10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상속세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 與 “배우자 상속세 폐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배우자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도록 하겠다”며 “함께 재산을 일군 배우자 간의 상속은 세대 간 부 이전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배우자 상속에 과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상속세의 배우자 공제 한도를 현행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높이겠다던 기존 당론에서 한층 나아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민주당이 상속세 공제한도 상향을 빠르게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상속세 체계를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도 밝혔다. 권 위원장은 “상속인이 실제로 상속받은 만큼만 세금으로 내도록 하겠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개국이 채택하는 방식으로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과세를 가능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유산세 방식은 현행 상속세로 사망자의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이 적용되면 상속인은 실제로 물려받은 자산 규모에 맞춰 세금을 낸다. 증여세처럼 수증자가 받은 재산만큼만 과세하는 것이다. 예컨대 18억 원의 재산을 자녀 세 명이 똑같이 상속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은 18억 원에 대한 세금을 계산한 후 세 명이 나눠 납부한다. 유산취득세 방식이 적용되면 각자 물려받은 6억 원을 기준으로 상속세가 정해진다. 누진세 체계에 따라 세 부담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은 정부가 4일 밝힌 상속세 개편 방향과도 일치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동대문구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59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낡은 상속세를 개편해야 할 때”라며 “유산취득세로의 개편 방안을 이달 중 발표하고 법 개정을 위한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 野 “면제 기준 10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민주당은 속도전에 나섰다. 이날 상속세 면제 기준을 10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상향하는 상속세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원회의 계류 법안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민주당이 상속세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한 것은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의인 기재위 위원장이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이기 때문이다. 상임위 단계에서 논의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상속세 개편 구상을 신속하게 실현시키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해당 안건을 상임위가 아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 위원장은 회의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가 열리면 본회의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고 하는 의안을 제출해 표결로 결정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이 소관 상임위에서 최대 180일 동안 묶여 있는 시간을 줄이면,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안건 상정 권한을 가진 본회의에서 빠른 속도로 표결 처리가 가능하다.
● ‘공제한도 확대’ 공통점-‘최고세율 인하’ 이견
여야가 본격적으로 상속세 완화에 속도를 내면서 실제로 관련 세금이 줄어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추진됐던 상속세 개편안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맞물리면서 좌초됐다.
우선 여야 모두 상속세 공제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 대표는 일괄 공제 한도 5억 원, 배우자 공제 한도 5억 원을 각 8억 원, 10억 원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국민의힘도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 한도를 각각 10억 원으로 증액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가, 이날 배우자의 상속세를 아예 면제하자고 나섰다. 여야가 모두 상속세 공제한도를 높여 관련 세금을 줄이자는 큰 흐름에는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다. 국민의힘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최대주주 할증 평가 제도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고세율 인하와 최대주주 할증 폐지는 ‘초부자 감세’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부 쟁점을 놓고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자, 민주당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룬 일괄·배우자 공제 상향부터 처리하기 위해 상속세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서는 상속세 개편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그 공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속세가 개편되면) 수도권의 대다수 중산층이 집을 팔지 않고 상속 가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 개편안에 대해서는 “최고세율 인하 고집”이라며 “소수의 수십·수백·수천억 원대 자산가만 이익”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속도전에 권 위원장도 이날 “민주당의 관심은 진정한 상속세 개편에 있지 않고 오로지 이재명이 세금 깎아줬다는 선전 구호를 만들려는 욕구뿐”이라며 견제에 나섰다. 그는 “이런 ‘무늬만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며 또다시 의회 폭거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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