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서 파면됐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1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는 모습. 2025.4.4/뉴스1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20대 대선 당선 인사에서 국민들이 자신을 뽑아준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2년 11개월의 재임 기간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첫 검사 출신’ ‘첫 서울대 법대 출신’ ‘서울 출신’ 등 정치사에 여러 기록을 갖고 당선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윤 전 대통령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정치 역정을 보였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던 ‘강골 검사’에서 정계 입문 선언 9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던 윤 전 대통령은 초유의 12·3비상계엄 선포로 헌정 사상 두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자 내란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며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 ‘9수’ 끝에 사시 합격… 늦깎이 검사에서 총장까지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성자 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충암고를 졸업한 윤 전 대통령은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계속 낙방했다. 9번째 도전 끝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04년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2007년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 사건 등을 수사했고 특별수사의 핵심 요직인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지냈다.
‘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린 건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국정원 압수수색 등을 놓고 상부와 갈등을 빚던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좌천돼 3년 가까이 지방에서 한직을 맴돌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으로 복귀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됐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적폐 청산’에 앞장서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활비 의혹 등 수사를 이어갔고 이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구속했다. 약 2년 뒤인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또 한 번 기수를 뛰어넘어 윤 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 文정부와 각세우다 보수 후보로 대권
문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임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총장 임명 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으로 정권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포함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밀어붙이면서 정권의 압력도 거세졌다. 친정권 성향의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조국혁신당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수사를 강도높게 진행했고 윤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1월 급기야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이른바 ‘추-윤 갈등’ 속에서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이미지가 굳어진 윤 전 대통령은 이듬해 3월 총장직에서 사퇴한 뒤 6월 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 전 대통령은 입당 98일 만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보수 진영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잦은 말실수와 공감능력 부족 등 ‘정치 신인’의 면모와 ‘김건희 리스크’ 등 약점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 상대 유력 주자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 “공정과 상식” 등 슬로건을 내건 그는 0.73%포인트 차이로 2022년 3월 20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 ‘용산 이전’부터 파면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2025.1.21. 사진공동취재단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검찰 편중 인사’, 이준석 당시 당 대표 징계 논란, 뉴욕 순방 중 비속어 논란 등 여파로 윤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임기 첫해부터 20~30%대에 머물렀다.
이듬해 제3자 변제안 등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합의를 꾀하면서 한일관계를 복원했고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케미’를 과시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한 점은 외교 분야 성과로도 꼽혔다.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에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율이 반등하기도 했지만 2023년 말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과 2024년 4월 총선 패배 등을 계기로 출범 2년도 되기 전에 윤석열 정부는 급속도로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총선 패배 이후 거대 야당과의 대치는 더 극심해졌다. 야당은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줄탄핵에 나섰고 윤 전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 등에 불참하는 등 야당과의 소통도 단절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윤-한 갈등’은 윤 전 대통령을 더 고립시켰다. 디올 백 수수 사건과 공천 개입 의혹 등 김건희 여사 문제는 물론 의정갈등 해법을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국정 혼란을 키웠다.
윤 전 대통령은 결국 45년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몰락을 자초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체포돼 구속됐다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석방된 다음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에게 “과거 구속 기소당했던 분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런 분들 생각이 많이 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까지 구속했던 그 역시 구속되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장면이자 그의 회한이 담긴 발언이었다.
그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며 4일 오전 11시 22분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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