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前법제처장 “韓대행 재판관 지명은 중대한 법 위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0일 2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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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궐위땐 대행이 적극적 권한 행사? 상당히 자의적 해석
헌법해석 주관하는 법제처가 ‘궐위 때도 현상유지 그쳐야’ 명시”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스페이시스에서 ‘이념편향적인 하향 평등주의 교육으론 나라의 미래 없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2017.12.22 뉴스1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는 현상유지에 그쳐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것은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10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추천 몫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명한 것을 두고 이같이 지적했다. 한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한 것을 두고 ‘월권’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법제처가 2010년 발간한 헌법 주석서에서 권한대행의 역할을 두고 “임시적 성질로 보아 현상 유지적인 것에 국한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처장으로서 헌법 주석서를 발간하고 감수한 이 처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통령 궐위(闕位)된 경우와 사고인 경우를 분리해 대통령 권한행사 범위를 적극적으로 보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라며 “헌법 개정과 해석의 주관부처인 법제처의 헌법 주석서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권한대행이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9년 행정고시,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전 처장은 1988년 문을 연 헌법재판소의 제1호 헌법 연구관이다. 2008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0년 당시 발간한 헌법 주석서에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에 권한 행사는 현상 유지에 한해야 한다고 돼 있다.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건가.

“자칫 실기한 정책으로 국익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 외에는 현상 유지 행위에 그쳐야 하고, 소극적 행위에 그쳐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의 공식입장이냐는 물음에는 법제처가 정부 내에서 헌법에 관한 최종적 해석권이 있는 곳이라는 답으로 대신하겠다. 법제처는 헌법 개정의 주관 부처이기도 하다. 정부의 모든 법령 해석권은 법제처에 있기 때문에 헌법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정부에서 헌법에 관한 해석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거나 이견이 있다면 하나의 교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법제처장 명의로 주석서를 발간하고 직접 감수했다. 헌법 해석 주관 부서로서 법제처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제처는 주석서를 발간하며 ‘한국헌법학화 전문 연구팀의 견해일 뿐 법제처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이라고 밝혔다.)

―김석우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이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 궐위와 사고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서 “궐위 시에는 권한대행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김 직무대행이 사고의 경우에는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니까 권한행사를 가급적 자제해야 하지만 궐위의 경우는 대통령 복귀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학설상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나눠서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부에 헌법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나?

“헌법 해석에 관해 법무부 의견과 법제처 의견이 갈릴 경우에는 법제처가 유권해석권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법제처 견해가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법제처에서 처장 명의로 나온 주석서에 권한행사 범위를 명시했기 때문에 이걸 따라야 한다. 한 권한대행이 이번에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것은 당장 지명하지 않을 경우 ‘국익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그런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대통령 권한의 핵심인 임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새 대통령의 취임을 2개월도 안 남겨놓은 시점에서 기습적으로 지명한 것 자체가 법제처 해석 여부를 떠나서도 헌법에 위반되고,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정문 마지막에 나온 결론 부분을 인용해 이번 헌재 재판관 후보자 2명 지명은 권한대행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이며 탄핵 사유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계선, 조한창 재판관을 임명한 것과 한덕수 권한대행이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문제되지 않는가.

“일각에서 그 재판관들은 괜찮고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부장판사만 왜 시비를 거느냐는 반론도 있긴 하다. 그런데 그건 헌법을 제대로 모른 사람들이 국민을 선동하는 것과 똑같다. 최 대행이 임명한 두 재판관과 마 재판관은 국회 추천 몫이다. 헌법 111조 3항에 보면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한다고 돼 있다. 그걸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헌재도 판단하지 않았느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을 놓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적극적 행사로 헌법재판관 2명을 지명할 권리가 없다”고 비판했는데 국민의 선출 여부가 대통령 몫의 재판관 지명 시비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라고 보는가.

“저는 꼭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앉힐 수 없고, 또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헌법재판관들도 선출된 권력이 아닌데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선출된 권력의 전횡을 문제점으로 지적해서 헌법에 맞도록 하라는 것이 헌법 재판이고 또 헌법해석이다. 선출된 권력이 아닌 권한대행이 임명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건 철저하게 권한대행이 임명할 상황이냐 아니냐로 따져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입법부가 언제나 옳은가? 입법부가 잘못한 것은 사법부가 판단하지 않느냐. 선출되지도 않은 사법부가 판단하는 건데 그건 괜찮나. 헌법 위반을 문제 삼아야지 선출된 권력이 아닌 사람이 어떻다 하고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는 건 그건 오히려 3권분립의 원리와 입지를 좁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권한대행이 아주 위급하고 중대한 국익에 해를 끼친 사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명했다고 지적했는데 마은혁 재판관의 임명도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한가.

“마 재판관의 경우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임명한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는 당위다. 권한대행이 숙고하고 또는 중대한 국익을 침해하는 이런 손해 여부를 따지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 추천 몫 2명을 지명한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볼 것이 아니다. 한 권한대행이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보인다. 헌법적 차원에서 반드시 평가를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두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에 대해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접수됐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과연 헌법소원의 적격 요건에 부합할지 따져봐야 한다. 각하가 되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은 것 아니냐며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쉽사리 헌법소원이나 권한쟁의로 따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한 권한대행이 지명을 철회하고 이완규 법제처장도 스스로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표명하는 것이다.”

―한 총리가 두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헌재 결원 사태과 헌재 결정 지연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지명을 철회하더라도 새 정부가 들어서 대통령이 지명하기까지 재판관 공석으로 문제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저는 한 대행의 그 얘기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해서 재판관 7인으로도 충분히 심의를 진행하고 평의도 할 수 있고 평결도 할 수 있다. 당장 헌재가 시급하게 대통령 탄핵 사건처럼 판단해야 할 사건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달을 못 기다리나. 한 권한대행의 결원 부족으로 인한 우려는 궤변이다. 한 권한대행 본인이 강조했던 마지막 공직 생활의 소임을 다하려면 균형적인 시각으로 임해야 한다. 전직 법제처장으로서 고민 끝에 이야기하는 바다.”

이 전 처장은 “후배 법제처장이 헌재 재판관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축하할 일이고 이런 발언 자체가 상당히 부담을 주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인간적인 미안함을 무릅쓰고 조직을 옹호하는 것보다는 헌법의 기본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참고: 헌법주석서 Ⅲ 제 2판(2010년 2월 발간) 중 헌법 71조 관련

〈3. 학설과 판례〉
1.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 : ① 대통령의 사망, ② 탄핵결정으로 파면된 경우, ③ 대통
령이 피선자격을 상실한 경우, ④ 사임한 경우이다.
2. 사고인 경우 : ① 대통령이 존위하면서도 신병이나 장기간의 해외여행 등으로 직무
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② 국회의 탄핵소추로 권한행사가 정지된 경우이다.
3.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의 선거 :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한다(헌법 68조 2항).
4. 대통령의 권한대행순서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1차적으로 국무총
리가, 2차적으로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에 따라 그 권한을 대행한다(제71조). 한편 부통령제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 선출에 의하지 않은 국무총리, 국무위원이 그 권한을 대행하는 문제가 생긴다.
5. 권한대행자의 직무범위 : 직무대행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대통령 권한의 전반에 미칠것이나, 그 임시적 성질로 보아 현상유지적인 것에 국한된다고 하겠다.1) 하지만 현상유지적일 수도 있고 현상변경적일 수도 있다는 견해2)도 있다. 원인이 궐위든 사고든 원인에 상관없이 대통령의 직무전반에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도 있다. 선거로 후임자로 선출되기 전이나 대통령이 돌아오기 전에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없다면 이는 자칫 실기한 정책 결정으로 중대한 국익에 손해를 끼칠 수 있기에 국정전반에 미쳐야 하고 다만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무총리나 국무위원들이 새로운 정책결정을 한다는 것이 문제가 있기에 현상유지에 그친다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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