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개표 절차 시연회에서 투표지 분리기를 통과한 투표지를 꺼내고 있다. (공동취재) 2025.4.10
“여러 가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게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올 2월 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피청구인석에 앉아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발언 기회를 얻어 이렇게 말했다. 비상계엄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보낸 건 ‘엉터리 투표지’로 불거진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단은 투표관리관 인장이 뭉개져 빨갛게 보이는 ‘일장기 투표지’나 접힌 흔적이 보이지 않는 ‘빳빳한 투표지’ 등을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이 언급한 투표지들은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발견된 것들이다. 이미 2022년 대법원이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민경욱 전 의원이 낸 소송에서 재검표와 감정을 거쳐 “정상 투표용지”라고 판단한 것들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이 투표지들은 여전히 부정선거 의혹을 확산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하고 있다.
‘빳빳한 투표지’에 대해 대법원은 “상당수에서 접힌 흔적이 확인됐다”며 “일부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는 선거인이 애초에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일장기 투표지’에 대해 대법원은 “(잉크가 들어 있어 인주가 필요 없는) 도장에 인주를 묻혀 찍었을 때 관인이 뭉개질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장이 다발처럼 붙은 투표지에 대해 대법원은 “정전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받아들였고, 접착제 등이 묻은 투표지에 대해선 “회송용 봉투의 접착제 등이 묻을 수 있다”고 했다.
부정선거론자들은 당시 대법원 결론에 대해 “재검표에서 드러난 물증을 대법원 판결이 왜곡했다”고 주장하지만 재검표 과정에 참여했던 복수의 관계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재검표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선 민 전 의원 측 요구에 따라 사전투표용지 4만여 장의 일련번호(QR코드)를 전부 프로그램으로 분석했고, 결과는 문제없음으로 나왔다”며 “그 결과를 대법관 3명은 물론이고 부장판사와 대리인단들도 모두 지켜봤다”고 했다.
다만 ‘이상한 투표지’가 한번 발견될 경우 수년간 부정선거 의혹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선 선관위가 투표사무원들에게 “제대로 인쇄되지 않은 용지는 절대 배부하지 말라”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투표지 인쇄 후 수작업 등으로 인쇄 상태를 확인하는 등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전투표용지를 당일 투표용지와 똑같이 제작하고 투표지마다 일련번호를 매겨 사후 검증이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도록 논란을 없애는 차원”이라고 했다. 현재 투표일 당일 배부되는 용지에는 투표관리관이 일일이 도장을 찍는 반면, 사전투표용지는 선관위가 대량 제작을 위해 투표관리관 도장까지 일괄 인쇄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전투표용지에도 현장에서 일일이 도장을 찍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유권자가 오래 대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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