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예방접종 확대”…대선후보들 의료 공약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30일 11시 40분


3일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보건의료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성인 백신과 관련해서는 몇 년째 국가 예방접종 도입이 제자리걸음인 만큼 이번 대선 후보들의 정책이 주목된다. 

65세 이상 노년층에 큰 위협이 되는 폐렴구균 감염 예방을 위한 단백접합백신은 질병관리청이 2023년 진행한 도입 타당성 연구에서 ‘2순위 도입 백신’으로 선정한 바 있음에도 아직 국가 예방접종 사업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루 평균 80명이 폐렴으로 사망하고 그중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라는 점을 들면 폐렴구균 백신의 국가 예방접종 도입을 강조했다. 뉴시스

사망 원인 3위 폐렴, 국가 예방접종 도입은 여전히 제자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 원인통계에 따르면 폐렴은 암·심장질환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3위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 80명이 숨지고 9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세균성 폐렴에서 중요한 원인균인 폐렴구균은 폐렴뿐 아니라 수막염과 같은 침습성 질환을 유발하고 생존하더라도 신경학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대한 감염학회는 2025년 성인 예방접종 지침을 업데이트하며 65세 성인에게 20가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PCV20) 1회 접종 또는 15가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PCV15)과 폐렴구균 다당질백신(PPSV23) 순차 접종을 권고했다. 그러나 의학계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65세 이상 성인에게 폐렴구균 다당질 백신만을 지원하고 있어 단백접합백신 접종은 전액 본인 부담으로 높은 비용을 지급하고 접종해야 하는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에서 진행한 2024년 ‘신규 백신 도입 우선순위 연구’에서도 65세 이상에서 단백접합백신 도입이 인플루엔자 고용량 백신 다음 2순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질병 부담, 비용 효과성 등을 종합 평가해 국가 예방접종에 도입해야 할 백신으로 단백접합백신을 지목했다.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PCV)이 65세 이상에서 반드시 추가돼야 할 국가 예방접종 1순위로 꼽힌 바 있다. 한국 의학 바이오 기자협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에서 반드시 추가돼야 할 국가 예방접종으로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이 56%(933명)의 응답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면역원성, 폐렴 예방효과 뛰어난 단백접합백신

다당질 백신은 많은 혈청형을 포함하고 현재 국가 예방접종을 통해 무료 접종이 가능하다. 하지만 폐렴에 대한 예방 효과는 일관되지 않는다. 단백접합백신보다 면역 유도 능력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단백접합백신은 다당질 백신과 비교해 고령층에서 폐렴 구균성 폐렴 입원 예방에 있어 더 높은 예방 효과를 보였다. 특히 65~74세 연령층에서는 단독 단백결합 백신 13가 접종 시 백신 효과가 66.4%에 달했지만, 폐렴구균 다당질백신은 18.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두 백신을 순차 접종한 경우에는 80.3%로 가장 높은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

예산 논란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 65세 이상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비용 효과성 분석에서 20가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은 기존 23가 다당질 백신 대비 더 높은 예방 효과를 보이며 비용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은 1인당 접종 비용이 약 10만원으로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 약 4만7000원보다 높았지만, 침습성 폐렴구균 질환(IPD)과 비균혈성 폐렴(NBP) 발생과 관련 사망을 유의하게 줄였으며 삶의 질 보정 기대수명(QALY )을 증가시켰다.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의 추가 비용 대비 삶의 질 보정 기대수명 증가 효과는 약 2677달러(약 368만원)로 우리나라의 비용 효과성 기준을 크게 밑돌았다.

해외는 50세 이상이면 단백접합백신 접종으로 전환 

미국 질병 관리센터(CDC)는 작년 10월 모든 50세 이상 성인에게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 15·20·21가 가운데 1회 접종을 권고하며 기준 나이를 65세에서 50세로 낮췄다.  다당질 백신을 더 이상 권고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이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폐렴은 암, 심장질환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3위에 해당할 만큼 치명적인 질환이지만, 예방 효과가 입증된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이 아직 국가 예방접종으로 도입되지 않고 있다”라며 “감염내과 전문가로서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허가된 20가 백신은 단일 접종만으로도 넓은 혈청형을 가지고 있으며, 예방 효과뿐만 아니라 비용 효과성 측면에서도 국가사업 도입의 타당성을 갖췄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대선에서 일부 후보들이 성인 백신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이러한 약속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도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은 과학적 근거와 비용 효과성, 국민적 요구까지 모두 갖춘 국가 예방접종 후보임에도 여전히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고령층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공중보건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하루 80명이 폐렴으로 사망하고 그중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라는 통계는 국가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지점임을 보여준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예방백신 정책이 더는 소외되지 않도록 각 정당과 후보들의 실질적인 건강 공약이 필요한 상황이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