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특강서 “악영향 우려해 말 안해”
“고위급 올라갈수록 현실을 잘 몰라… 이런 함정 안빠지려 댓글 열심히 봐”
수보회의선 노동시장 양극화 지적 “같은 노동 다른 대우… 근본 변화를”
고위공직자 워크숍 입장하는 李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워크숍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에 입장하며 김용범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민석 국무총리, 이 대통령, 김 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 통상협상, 이빨이 흔들려 가지고 사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 진짜 ‘가마니’인 줄 알고 말이야.”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과 관련해 농담조로 이 같은 소회를 밝히며 “말을 하면 (협상에) 악영향을 주니까 말을 안 한 것”이라고 했다. 통상협상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행보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협상 타결을 계기로 직접 반박에 나선 것.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치아가 흔들려 주치의 검진을 받는 등 협상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 “美 협상서 국력 키워야겠다 생각”
이 대통령은 이날 특별강연에서 “말 안 하는 와중에 오리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우아한 자태로 있지만 물밑에선 생난리였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는 김민석 국무총리를 포함해 중앙부처 장차관 및 실장급 이상 공직자와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34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협상 과정에서) 이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이 흥망의 기로에 서 있지 않나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며 “여러분도 매우 중요한 변곡점에 저와 함께 서 계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 과정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 등과 수시로 회의를 열고, 오전 2∼3시에 협상팀과 전화 보고를 받는 등 실시간 대응 체계를 갖췄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관세 협상 사례 등을 참고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을 파악하고 상황별 대응책 마련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강연에서 인사 원칙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이 대통령은 “고위급으로 올라갈수록 현실을 잘 모르는데, 저는 이런 함정에 안 빠지려고 댓글을 열심히 본다”며 “전화기를 지금 수십 년째 같은 걸 쓰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면서도 아직 안 바꿔 이런저런 메시지를 웬만하면 다 읽어 본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저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해 본 적도 있어서 그 사람들 입장이나 이런 거를 조금은 이해한다”면서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자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공직자는 작은 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과거 소년공 시절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공직사회에서) 열심히 하면 바보가 아니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며 “직권남용의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림자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옛날에 ‘결식아동 카드’라는 게 표시가 딱 돼 있었는데, 그걸 김현지 보좌관이 지적해서 제가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이 만들어서 줬다”며 수요자 중심 행정을 강조했다.
● “네거티브 규제 방식 대전환 필요”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기업의 혁신과 투자에서 비롯된다”며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소위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전면적으로 하기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첨단 신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규제를 원칙으로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도 지적하면서 “같은 노동이 다른 대우를 받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입법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력망 인프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면서 차세대 전력망 구축을 지시했다. 김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전남권을 차세대 전력망 혁신기지로 만들어 가겠다”며 “전남 지역의 철강, 석유화학 등 산업단지를 재생에너지 ‘마이크로그리드’ 산단으로 조성하고 유연성 자원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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