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주식 의혹’ 폭탄맞은 與]
민심 역풍 거세자 강경대응 모드… 이춘석 신속 제명, 5년간 복당 못해
李대통령 지시로 국정위도 해촉
與, 부동산-코인 이은 ‘주식 포비아’… 의원들 대상 전수조사 가능성도
표정 어두운 與 지도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운데)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 대표는 주식 차명 거래 의혹이 불거진 이춘석 의원에 대해 “이 의원의 탈당으로 징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제명하겠다고 밝혔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차명 주식 거래 의혹으로 이춘석 의원이 탈당한 뒤 12시간여 만에 신속하게 제명 조치를 결정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주문한 것은 연이은 주식시장 관련 악재로 싸늘해진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말 발표된 정부 세제 개편안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개미 투자자들에게 뭇매를 맞은 데 이어 ‘2연타’를 맞은 셈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공약으로 내걸며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공공연히 강조한 가운데 정작 여권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이 의심되는 차명 거래 의혹이 터진 점도 신속한 조치의 배경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준법 최전선에 있어야 할 법제사법위원장이 당사자라는 점도 큰 악재”라고 했다.
● 與 “이춘석, 제명 결정으로 당 복귀 어렵게 돼”
정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께 정말 송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이 의원을 제명했다. 당사자의 자발적 결정인 탈당과 달리 제명은 당의 공식 절차에 따른 징계 처분이라는 점에서 당이 해당 인사의 책임을 명확히 물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당규는 제명된 자에 대해 5년간 복당을 금지하고 있어 이 의원의 복당 기회도 사실상 차단됐다. 이 대통령 지시로 이 의원은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장에서도 해촉됐고 송경희 기획위원이 후임으로 내정됐다.
이 의원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되면서 ‘내로남불’ 논란도 일고 있다. 그는 2019년 이미선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남편이 주식을 했지만 후보자도 주식 명의를 빌려주고 한 부분에 대한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 거래 시 취업을 제한하거나 벌금 기준을 높이는 등 처벌 강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의원 주식 계좌의 명의자인 차모 보좌관은 차명 거래가 아니라 이 의원이 주식 관리창을 대신 봐준 것이라는 취지로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 측은 4급 공무원인 보좌관의 경우 재산 신고도 하는 만큼 차 씨 개인 돈으로 운용되는 주식 계좌라는 점도 입증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관계자는 “초기 해명이 석연치 않고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 의원이 탈당을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에 대해선 의원직 박탈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를 논의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고 있어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윤리특위는 당초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위원을 6 대 6 동수로 구성하는 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지만 정 대표는 취임 후 “민주당 위원이 다수여야 한다’며 합의를 파기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윤리특위 구성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춘석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5.08.05. 뉴시스당내에선 이 의원 이외에 “차명 거래를 하는 의원이 더 있는 것 아니냐”, “다음은 누구냐”는 등의 불안감과 공포가 퍼지고 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로 불거진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논란에 이어 2023년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의혹으로 당 전체가 겪은 트라우마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종의 ‘주식 포비아’로 번지고 있다는 것. 두 사건은 모두 개별 의원 동의하에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가 이뤄졌다.
당 지도부가 의원 대상 전수조사 등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 대표는 이날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이재명 정부의 기조대로 엄정하게,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엄단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당 관계자는 “이 사태를 계기로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 일반적인 주식 거래도 미공개 정보 이용 등으로 엮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등기가 남는 부동산과 본인 명의 지갑을 조사하면 되는 코인과는 달리 차명 주식 거래는 전수조사 방식으로 밝혀내기가 어려운 만큼 제보 중심으로 조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좌진이나 친구 등 명의를 빌려 투자한 경우 자금 흐름을 파악할 방법이 강제수사 외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의원과 보좌진 전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포렌식을 하는 방법도 논의되지만, 비용과 시간 문제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당 관계자는 “앞서 강선우 의원의 ‘보좌진 갑질’ 사태 이후 당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보좌진들 사이에 불만이 큰 상황”이라며 “이 의원처럼 보좌진을 불법 주식 거래에 동원한 경우 ‘갑질’ 사례로 익명 제보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 보좌진은 “신임 대표가 취임 초기 당내 여론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주식 투자 관련 비위가 추가로 드러나는 의원을 본보기 삼아 제명 등 징계에 나서면 강한 리더십을 부각하고 취임 초반 주도권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