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만에 사라지는 검찰]
일제강점기 비대해진 경찰 힘빼려… 檢에 수사-기소-영장청구권 몰아줘
前대통령 구속 등 성역에도 칼날
권한 커지며 정치검찰 논란 이어져… 檢출신 대통령 냈지만 개혁대상에
“‘정권의 칼’이었던 오랜 세월 속에 불신이 자라는 걸 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을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25일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 원로는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수사를 받거나 수감되는 역사가 반복된 책임에서 검찰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취지였다. 고검장을 지낸 한 법조인은 “검찰 개혁 취지를 이해한다”며 “검찰 구성원들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1948년 검찰이 설치될 때는 일제강점기 시절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으면서 ‘인권 보호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마련된 검찰청법에 ‘경찰은 범죄 수사에 있어 검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에 더해 헌법상 영장청구권까지 검찰이 독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초창기 검찰은 정권의 외압에 종종 부딪혔다. 이승만 정부 시절이었던 1949년엔 검찰 수사팀이 ‘정권 실세’였던 임영신 당시 상공부 장관을 재판에 넘겼다가 최대교 서울지검장이 정권의 압박 끝에 검사직을 내려놨다. 1950년 김익진 검찰총장은 “기소하지 말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서신에도 무고한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았던 ‘대한정치공작대’ 관련자를 기소했다가 좌천, 파면에 이어 구금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군사정부 시절이었던 제5공화국 시절(1981∼1988년)엔 검찰총장이 5명이나 바뀌었다.
법조계에선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은 검찰이 이런 초심을 잃고,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편파적으로 사용하면서 개혁 대상으로 내몰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 권력 견제하다 ‘수사 권력’으로 변질
장영자 사건검찰은 1982년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으로 불린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6400억 원대 어음 사기 사건 수사를 계기로 국민적 주목을 받았다. ‘특별수사의 꽃’으로 알려졌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후 중수부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을 수사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고,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형제 등 친인척들을 줄줄이 법정에 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중수부는 2002년엔 현직 대통령(노무현)과 야당 대선 후보(이회창)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을 파헤쳐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후진적 정치의 원인으로 지목받던 지구당 폐지 등 정치개혁을 이끌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하지만 중수부의 권한 비대화는 ‘표적·과잉 수사’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 인사를 타깃으로 한 사정(司正)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중수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조사하다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대검 중수부는 2013년 4월 간판을 내리게 됐다.
● 총장 출신 대통령 파면 뒤 검찰청 폐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던 검찰이 간판을 내리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다.
검찰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재판에 넘겼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수사팀장으로 있던 ‘국정농단 특검’이 수사한 결과를 검찰이 넘겨받아 기소했던 것이다. 이어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5명의 전직 국가정보원장 등 과거 정권 고위층을 겨냥한 적폐 청산 수사가 이어졌다. 사실상 사문화됐던 직권남용 혐의 등을 ‘윤석열의 검찰’이 적극적으로 적용하면서 당시 검찰 안팎에선 “직권남용의 남용”이란 비판도 나왔다.
검찰과 현 여권의 관계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당시 여권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한 검찰이 표적 수사를 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검수완박법’을 추진하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직을 던지고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건희 여사 무혐의 처분윤석열 정부에선 검사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꿰찼고, 검찰은 야당 대표에 대해선 전방위로 수사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출범한 특검은 김 여사를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 수사가 부정당한 것이다.
한 법조인은 “수사기관이 서로 견제를 통해 권력이 집중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게 검찰청 폐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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