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유엔총회서 “핵 포기 없다”
‘핵보유국 인정’ 잘못된 신호 우려
정부내 ‘자주-동맹파 불협화음’ 지적
외교부 “비핵화는 일관된 목표” 진화
정동영 통일부 장관(사진)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 중 하나가 돼 버렸다”며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고도화를 우려한 것이지만 북한을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5대 핵보유국(P5)과 비슷한 핵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내에서도 ‘두 국가론’에 이어 북핵 문제를 두고 자주파와 동맹파 간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 정동영 “北, 美 타격 가능 3대 국가”
‘2025 국제한반도포럼(GKF)’ 참석을 위해 독일을 방문 중인 정 장관은 이날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스스로 전략국가라고 말하는데 전략적 위치가 달라졌다. 7년 전 위치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2018년 6월 열린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와는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달라졌다는 것. 정 장관은 북한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 중 하나라고 규정하면서 “일단 그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어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스몰딜(small deal)이 성사됐더라면 핵 문제 전개 과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상회담 결렬 직후 최선희 북한 외무부상(현 외무상)이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발언한 것을 언급하며 “그 말이 불행하게도 맞았다”고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을 두고 한국이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이 ICBM 개발을 완성해 중국, 러시아와 같은 수준의 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발언 역시 회담 실패 책임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로 돌린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발언은 북한이 핵 포기 불가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에게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법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절대로 주권 포기, 생존권 포기, 위헌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외교부는 “비핵화는 일관된 목표”
정 장관이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강조하는 발언에 나선 것을 두고 신속한 북-미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제외한 북-미 정상 대화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내놨지만 미 백악관과 국무부 등이 연일 “우리의 목표는 북한 비핵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ICBM 개발도 재진입 기술만 남겨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강조하는 발언이 미국과의 공조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고 미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핵 군축 협상을 하자고 대신 말해 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과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대화할 만한 명분이 있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것인지 따져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노출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일관된 목표”라고 밝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국내 통신사 인터뷰에서 정 장관이 남북 관계를 ‘현실적 두 국가’라고 규정한 데 대해 “남북 기본합의서에도 남북은 특수관계라고 규정돼 있다”며 “‘특수관계’라는 개념에서 손을 떼면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가 얘기를 꺼낼 입지가 너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