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미정상회담]
관세합의 판 흔들기 ‘벼랑끝 공세’
쌀-소고기 시장 개방도 추가로 요구… 정상회담 하루 전까지 실무협상 진행
정부 측 “쉽지 않은 회담 될수 있어”… 이재용-최태원 등 4대그룹 총수 美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5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 직전 대미(對美) 직접 투자 증액과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고강도 압박에 나서면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관세 협상 극적 합의로 봉합된 통상 현안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 돌출한 것. 이재명 정부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외교·산업·통상 수장에 이어 24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총력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리한 요구에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설득을 이어갈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면서 “쉽지 않은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관세 합의 사실상 뒤집은 美의 ‘벼랑 끝 압박’
미국 백악관이 23일(현지 시간) ‘X’에 “의회예산국(CBO)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의제가 유지된다면 향후 10년간 미국의 (무역)적자를 최대 4조 달러(약 5560조 원)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글과 함께 관련 내용을 담은 이미지를 올렸다. 사진 출처 백악관 ‘X’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정부에 직접 투자액 증액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기존 관세 합의를 뒤엎을 수 있다는 ‘벼랑 끝 전술’로 압박에 나선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대규모 대미 투자펀드 이행 방안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며 “직접 투자 비중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펀드 중 직접 투자 비중은 5% 안팎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미국은 또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액 자체를 늘리는 방안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미국은 우리 정부가 시장 개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 압박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본격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조현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면담 결과 보도자료에서 “‘7·30 관세 합의’를 평가하고 일부 미합의 사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통상 당국 간 진행 중인 협의가 원만하게 좁혀질 수 있도록 계속 독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미국 측이 관세 분야 이견을 거론했다는 점을 확인한 것.
미 국무부는 “루비오 장관과 조 장관은 미국 제조업 재활성화(revitalize)와 한미 무역 관계의 공정성 및 호혜성(fairness and reciprocity)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줄 진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한미 관계 진전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에 한국이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1000억 달러(약 140조 원)의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한 기존 관세 합의안으로는 한국의 대미 수출 흑자를 해소하는 데 부족하다는 얘기다.
농산물 개방 역시 아직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기존 관세 합의를 통해 한국이 검역 절차를 완화하기로 했지만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특히 미국은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에 대해선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과일 등 일부 수입 확대도 협상안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정상회담 하루 전까지 실무협의… 대통령 3실장에 재계 총수들도 집결
한미는 정상회담 하루 전까지 고위급 실무협의를 이어 간다는 방침이다. 강 비서실장은 24일 미국으로 출국하며 기자들과 만나 “이번 정상회담 성공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민관이 힘을 합쳐서 정상회담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한마디라도 더 설득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정책실장 등 대통령 3실장이 워싱턴에 집결하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도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이날 일제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업들은 이번 회담에서 1500억 달러(약 210조 원) 규모의 자체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정상회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압박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담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실무 협의에서 막판까지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오벌오피스(oval office·미국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리는 즉흥 질의응답 방식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 등 ‘트럼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것. 정부 소식통은 “통상 정상이 만나는 회담은 모든 게 준비된 ‘세리머니’ 성격이 강한데 이번 회담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위성락 대통령 국가안보실장은 24일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브리핑에서 ‘강 실장이 이례적인 방미를 할 만큼 의제 조율이 잘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반적인 여건은 좋다”면서도 “한미 간에 아직 협의를 요하는 현안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통상) 안정화, (동맹 관계) 현대화 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며 “의제 조율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한다 그런 차원은 아니다. 정상회담을 할 타이밍쯤 되면 조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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