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안미경중’ 모호성 벗고 실용외교
李 “中봉쇄정책이후 상황 달라져… 中과는 지리적 가까운 관계 관리”
한미동맹 강조 전향적 메시지… 일부선 “대중 외교 리스크 우려”
李대통령, CSIS 연설
이재명 대통령(왼쪽)이 25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정책 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 한국은 안미경중의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젠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워싱턴=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대해 “더 이상 취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히면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 노선은 한미 동맹 강화를 중심으로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밀접한 한중 경제 관계에 따라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불가 입장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일각에선 이 대통령에 대해 ‘친중·반미’로 평가하는 시각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에 전향적인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 “중국과 지리적 불가피한 관계 관리하는 수준”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발언은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나왔다. 이날 강연에는 척 헤이글·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과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 제임스 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 월터 샤프·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국 조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현직 고위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존 햄리 CSIS 회장은 이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마치자 “일부 사람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으로 기울고, 안보는 미국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한다”며 “또 (이) 대통령에 대해 너무 ‘친중(pro-China)’적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물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일종의 강력한 견제정책, 심하게 얘기하면 봉쇄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런 입장을 가져왔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유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에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한국도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순 없는 상태가 됐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은 우리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거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이제는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와 첨단 기술 규제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한국이 더 이상 안미경중 기조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다만 이 대통령은 “미국도 중국과 기본적으로 경쟁하고 대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력할 분야에 대해 협력하는 게 사실”이라며 미중, 한중 관계의 공통점을 부각했다. 정부 소식통은 “신정부가 가치외교 대신 실용외교를 택한 게 미중 간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한미 동맹 중심의 외교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 미국 조야 ‘친중-반미’ 이미지 불식 집중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세력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일각에서 이 대통령을 겨냥한 ‘친중-반미’ 낙인찍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안팎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아시아 동맹국을 겨냥해 안미경중 기조를 포기해야 한다고 압박해 왔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을 심화시킨다”며 “경제와 안보를 이원화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현 정부 기조를 고려할 때 대중 외교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의 협상 상황에서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립서비스일 수 있지만 중국의 생각을 어디까지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다음 달 우원식 국회의장의 중국 ‘전승절’ 방중 등의 계기에 당장 어떤 메시지를 낼지 복잡해질 수 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