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개최한 검찰개혁 청문회에서 나경원 의원(오른쪽 앞) 등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추미애 위원장(왼쪽)에게 다가가 의사진행 발언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살다 살다 이런 꼴불견은 처음 본다. 역대 최악의 법사위다.”
4선 의원 출신인 야권의 한 원로 정치인은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야가 법사위에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등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22대 국회 법사위가 최악의 싸움판으로 전락했다는 것.
정치권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노리는 여야 의원들이 대거 법사위에 배치돼 강성 지지층 표심을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한 점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6선)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5선)의 간사 선임에 제동을 거는 등 이른바 ‘추-나 대전’도 이어지면서 법사위는 연일 난장판을 방불케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의 체계·자구(字句·문구와 어구) 심사를 맡아 사실상 ‘상원(上院)’ 역할을 하는 법사위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까지 멈춰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사위 전쟁’의 최전선에는 ‘추-나 대전’이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 상임위 간사는 각 당의 추천을 존중해 선출하지만, 여당이 나 의원 간사 선임에 제동을 걸면서 갈등이 격화됐다. 민주당은 나 의원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이해 충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16일 전체회의에서 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막말이 이어지고, 상대의 막말을 비난하며 다시 충돌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나 의원은 2일 간사 선임 안건이 상정되지 않자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말해 여당이 강하게 반발했다. 추 위원장도 22일 의사진행발언을 요구하는 나 의원에게 “이렇게 하는 게 ‘윤석열 오빠’한테 무슨 도움이 됩니까”라고 해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을 샀다.
초선 의원들도 막말 충돌에 가담하고 있다. 범여권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16일 나 의원을 겨냥해 “다시는 이런 인간이 국민을 대의한다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간사까지 나오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했고, 같은 날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 “사모님은 뭐 하세요”라고 했다가 사과했다. 박 의원은 2018년 부인과 사별했다.
일방적인 회의 진행도 법사위 충돌 격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22일 검찰개혁 입법청문회는 의사진행발언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추 위원장이 퇴장 명령을 내리면서 오전 내내 파행됐다. 한 원로 정치인은 “여당은 힘만 믿고 교만하고, 야당은 격렬한 언어로 투쟁만 하고 있다”며 “여당은 여당답게 겸손하고, 야당은 야당답게 정책 대안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충돌이 격화되면서 ‘아니면 말고’식 검증되지 않은 의혹 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 후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만났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여당에서조차 서 의원이 받았다는 제보에 대해 진위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한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를 30일 열기로 했다.
● 지방선거 노린 ‘적대적 공생’에 민생법안은 뒷전
법사위가 최악의 난장판이 된 것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 후보군들이 법사위에 대거 배치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야권 관계자는 “정쟁의 최일선에서 상대와 싸우는 게 공천에 유리하다는 계산으로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서영교 전현희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추 위원장과 김용민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국민의힘에서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나 의원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법사위가 아수라장이 된 사이 각종 민생법안 처리는 한없이 늦어지고 있다. 신속한 국가연구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완화하는 내용의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비롯해 아동학대 관련 범죄 전력자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을 대안 교육기관까지 넓히는 아동복지법 개정안 등이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에서 논의가 묶인 상태다.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K스틸법) 등 여야 공통 발의 법안과 반도체·배터리 산업 지원을 위한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은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고도 법사위 처리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복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관용과 자제’라는 덕목을 생각해야 한다”며 “법사위 회의장에서 공방만 벌일 게 아니라 회의장 바깥에서 대화도 해보고, 한발씩 물러서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집권당이 독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 기간별로 여야가 교체하는 방식으로라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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