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들 일하는 ‘초록기억카페’
직접 재배한 상추로 음료 만들고
손님 응대하며 사회적 고립감 해소
올해 2곳 추가해 4곳까지 늘리기로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1층에 마련된 ‘초록기억카페’에서 초로기 치매 환자 점원(오른쪽)이 바리스타의 지도에 따라 음료를 만들고 있다. 초로기 치매는 원인 질환에 관계없이 65세 미만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한 치매를 뜻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초록 주스 나왔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1층 한편에 마련된 ‘초록기억카페’.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중년 남성 카페 점원이 손님 테이블에 주스 두 잔을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이곳은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직접 음료를 만드는 특별한 매장이다. 초로기 치매는 만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여주인공이 바로 초로기 치매 환자였다. 초로기 치매는 젊은 나이에 발병하기에 경제 활동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노년기 치매에 비해 치료 정보와 맞춤형 복지도 부족한 편이다.
서울시는 환자들의 경제 활동 참여를 돕기 위해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기획했다. 지역 치매안심센터에서 직원 10명을 선정했고, 카페 이름은 ‘초로기’ 발음과 비슷한 ‘초록’으로 지었다.
● “다시 일하면서 자신감 생겨”
김모 씨(63)는 2019년부터 초로기 치매를 앓아 직장생활이 어려웠고 오랫동안 생활고를 겪었지만, 초록기억카페에서 일하며 희망을 되찾았다. 김 씨는 “이제 고생한 아내에게 따뜻한 옷이라도 사줄 수 있어 너무 기쁘다”라고 말했다. 초록기억카페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건강한 삶을 되찾게 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다른 직원과 일하고 손님을 응대하며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함은 물론이고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점원들은 구청 시니어클럽 소속 바리스타와 두 명씩 팀을 이뤄 함께 일한다. 이날도 바리스타는 “상추 4장을 씻어서 통에 넣어 주세요” “컵에 음료를 따라 그릇 위에 놓아 주세요”라며 초로기 치매 환자에게 작업 순서를 지도했다. 치매 환자인 점원은 상추와 사과, 홍삼 가루 등의 용량이 적힌 레시피를 보며 15일 정식 개점을 앞두고 카페 일을 배워 나갔다.
김건하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능수능란하진 않더라도 초로기 치매 환자들도 레시피에 따라 간단한 작업을 해내는 데는 무리가 없다”라며 “환자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한다는 점만으로도 정서적 안정과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카페에는 작은 스마트팜도 있다. 카페 외벽 유리 재질 칸막이 안에는 ‘카이피라’와 ‘버터헤드’ 등 푸른 채소 네 가지가 자라고 있었다. 환자들은 스마트팜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고 물갈이와 청소도 직접 한다. 직접 기른 상추로는 카페 메인 음료인 초록 주스를 만든다.
● “환자와 가족, 지역사회 교류의 장”
서울시는 2023년 강서구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이달 7일 도봉구에 두 번째 초록기억카페를 열었고, 15일에는 양천구에 추가로 한 곳을 더 개장할 예정이다. 지역 치매안심센터, 보건소 등과 협업해 젊은 치매 환자 특성에 맞춘 스마트팜 수경재배 원예 교육 같은 사회 참여 프로그램을 매주 1회씩 12주간 카페에서 운영할 계획이다. 카페도 올해 자치구 1곳을 추가로 선정해 총 4곳까지 확대한다.
이 밖에도 서울시는 25개 자치구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인지·신체·일상생활 훈련과 작업치료 등 초로기 치매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카페 운영으로 초로기 치매 환자들의 우울감 개선과 가족 부담 경감 효과를 확인했다”라며 “앞으로 주민과 교류하는 사회 활동 경험을 늘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지지 체계를 마련하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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