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떠나는 길, 빛나는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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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여는 사람들] 〈7〉 양종훈 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
해녀 은퇴식 열고 명예로운 배웅… 아흔 살 해녀들 “죽어서도 물질”
후배에게 테왁 등 넘겨주고 떠나… “예우하는 게 문화 전승의 시작”
참전용사 등 사진 촬영 재능기부도

지난해 5월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 회관에서 양종훈 이사장(오른쪽)이 ‘제주해녀 은퇴식―마지막 물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양 이사장은 현재까지 해녀 64명에 대한 은퇴식을 진행했다. 제주해녀문화협회 제공
지난해 5월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 회관에서 양종훈 이사장(오른쪽)이 ‘제주해녀 은퇴식―마지막 물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양 이사장은 현재까지 해녀 64명에 대한 은퇴식을 진행했다. 제주해녀문화협회 제공
“해녀 삼춘(제주에서 남녀 구분 없이 웃어른을 부르는 말)들이 한평생 해왔던 물질을 어떻게 그만두는 줄 알암수꽈(아시나요)? 어느 날 어촌계장이 ‘삼춘 내일부터 물질 그만합써(하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끝나는 거예요.”

이달 10일 제주시 연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양종훈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다큐멘터리 사진가 겸 상명대 디지털이미지학과 교수)은 이렇게 말했다. 제주 출신인 그는 쓸쓸하기만 했던 해녀의 마지막 순간을 빛내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제주 해녀 은퇴식’을 열고 있다.

양 이사장은 “국가중요어업유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세계중요농업유산 등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제주 해녀의 마지막은 한없이 초라한 상황”이라며 “평생 제주 바다를 지킨 해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냐”며 연구협회 창립과 은퇴식을 마련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작년 5월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를 시작으로 수원리, 금능리, 월령리, 구좌읍 하도리, 서귀포시 법환동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해녀 총 64명에 대한 은퇴식을 개최했다. 은퇴 해녀의 나이는 적게는 59세, 많게는 96세였고, 경력은 48년에서 75년이었다.

● “죽어서도 물질하겠다”는 은퇴 제주 해녀들

해녀 은퇴식의 반응은 뜨거웠다. 서러운 마음을 감춘 채 조용히 바다를 떠났던 선배 해녀와 달리 가족과 동료, 이웃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명예롭게 해녀복을 벗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은퇴식은 △마지막 물질 시연 △테왁, 빗창, 물안경 등 물질 도구를 후배 해녀에게 대물림 △걸스카우트 명예 지도자증 전달 등으로 이뤄진다. 작년 5월 25일 귀덕2리 은퇴식에서 마지막 물질에 나선 김유생 해녀(92)와 강두교 해녀(91)는 “죽어서도 물질하며 살겠다”는 소감으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자아냈다. 지난해 12월 9일 금능리 은퇴식에선 홍옥랑 해녀(83)가 자신의 물질 도구를 새내기 해녀에게 넘겨주면서 “제주바당 잘 지켜사허여(제주 바다 잘 지켜야 한다)”라는 당부를 전했다.

양 이사장은 “작년 기준 제주 해녀 수는 이미 2800여 명을 밑돌고 있는 데다 대부분 고령이다. 거기에 매년 약 300명의 해녀가 은퇴하는데, 새내기 해녀들의 어촌계 진입은 1년에 30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평생 바다를 누빈 해녀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부터가 해녀 문화 전승의 시작이니만큼 향후 103곳에 이르는 도내 어촌계 전체를 대상으로 은퇴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양 이사장은 은퇴식 외에도 ‘대상군(大上軍)’ 해녀를 기리는 명인 명장 헌정식, ‘제주 해녀 사진전’ 등 해녀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 양종훈 이사장, 제주 참전용사-소년범 촬영도

본업이 사진가인 양 이사장은 참전용사를 위한 ‘제복의 영웅들’, 소년범 선도 프로젝트 ‘가족사진’ 등 재능기부에도 나서고 있다.

제복의 영웅들은 정전 70주년을 맞은 2023년부터 제주농협과 함께 제주 출신 참전용사 약 200명을 대상으로 제복을 입은 사진을 촬영한 뒤 액자로 제작해 전달하는 행사다. 양 이사장은 “제주 출신으로 구성된 해병대 3, 4기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분들인데, 현재 200여 명이 생존해 있다”며 “사진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군복을 멋지게 입힌 후 찍는다. 참전용사가 ‘6·25에 참전하길 잘했다’ 하실 땐 눈물이 확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년범 가족사진의 경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일상 회복 의지를 높여주기 위해 양 이사장이 자비를 들여 진행하는 사업이다. 그는 현재도 매달 서울과 안양, 제주소년원을 돌고 있다. 양 이사장은 “소년범 열 명 중 아홉 명이 가족사진을 찍어본 적 없다는 뉴스를 보고 가족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며 “프로젝트는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의 협조로 시작할 수 있었다. 가족사진 촬영 시작 이후 실제 재범률도 유의미하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올해 교수 정년이 1년 남은 양 이사장은 퇴직 후가 더 바쁠 것 같다고 걱정(?)한다. 양 이사장은 “제주 해녀 은퇴식 말고도 사진집인 ‘제주 해녀’ 중국어판 출간과 미국 본토에서 해녀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퇴직 후에는 제주에 작업 공간을 마련해 창작 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정년은 곧 또 다른 시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양종훈#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제주해녀#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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