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AI 교과서… 희망 학교만 도입, 발행사들은 “소송”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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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로 격하… 현장 갑론을박
교육부, 박람회 열고 수업 시연… 참관 학부모-교사 만족도 상승
교육 현장선 도입 반대 의견 다수… “디지털 기기 사용 늘어 중독 우려”
정부 “교육자료 규정법 재의 건의”… 교과서 발행사 “원안대로 도입을”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석 달가량 앞두고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되며 AI 디지털 교과서는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지위가 격하됐다. 아러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정부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예상되는 가운데, 교육부는 현장 반발을 감안해 ‘올해에는 원하는 학교만 자율적으로 AI 디지털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이다. 학교 현장에선 AI 디지털 교과서 지위를 둘러싼 논란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 AI 디지털 교과서 활용 수업 공개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에서 서울 경일초 김현아 교사가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초등학교 3학년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교육부 제공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에서 서울 경일초 김현아 교사가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초등학교 3학년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교육부 제공
지난해 12월 1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2전시장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 서울 경일초의 김현아 교사가 한 학생이 태블릿으로 찍어 올린 식물 사진을 가리켰다. 이어 교사가 영어로 “이건 무슨 색이야?”라고 묻자 학생들은 일제히 “초록색이요”라고 영어로 답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 초등학교 3,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도입된다. 이날 박람회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영어 AI 디지털 교과서 수업 시연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탑재된 태블릿 기기를 들고 교실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어 학급 칠판에 올렸다. 이후 선생님과 함께 각자 찍은 사진을 지켜보며 색깔을 묻고 답했다. ‘AI 모모와 영상통화’ 시간에는 ‘모모’라는 캐릭터와 영상통화를 하며 인형의 색깔을 맞히는 등의 문제를 풀고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수업을 마쳤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김지안 군은 “태블릿을 활용해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영어 수업이 재밌었다”고 했다.

이날 박람회에서는 선생님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가 자유롭게 참가해 수업 시연을 지켜보고 여러 AI 디지털 교과서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이날 초등학교 3학년 대상으로 영어 AI 디지털 교과서 시연을 진행한 김 교사는 “AI 디지털 교과서에 콘텐츠가 많이 추가되어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 연습을 할 수 있다”며 “선생님은 대시보드를 통해 학생들의 개별 수준을 바로 파악하고 수업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업 시연에 참가한 학생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조작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수업 시연에 참가한 학생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조작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실제로 박람회에서 AI 디지털 교과서가 수업에서 활용되는 모습을 확인한 뒤 교사와 학부모의 전반적인 만족도가 상승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박람회에서 수업을 참관한 교사 35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만족도는 참관 전 평균 3.97점에서 참관 후 4.33점으로 상승했다. 학부모 176명의 만족도 역시 참관 전 평균 3.53점에서 참관 후 4.23점으로 올랐다.

● “디지털 기기 중독 우려” 현장 반발은 여전

이처럼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학교와 교사를 대상으로 웹 전시를 진행하고, 대중을 상대로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AI 디지털 교과서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현장 반발은 여전하다. 실제로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웹 전시본을 검토한 교사 555명 중 90%가 AI 디지털 교과서의 ‘교과서’ 도입을 반대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김영호 교육위원장,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학부모 응답자 7만4243명 중 84.9%가 AI 디지털 교과서의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기도 했다.

실제로 13일 박람회에서 진행된 수업 시연에서 중간중간 학생들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앞에 두고 집중하지 못하거나 멍하게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AI 디지털 교과서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보조 교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현장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 5분 이상 수업이 지체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아무리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도 수업 시간 외에 디지털 기기로 노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며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서 AI 디지털 교과서로 인해 학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면서 중독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현장에선 효과성 검증 부재, 문해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새 학기 시작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 교과서 지위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준비가 가능하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 교과서 발행사는 소송 예고

현장 반대가 이어지자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AI 디지털 교과서 지위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교과서일 경우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AI 디지털 교과서를 채택해야 하지만, 교육자료일 때에는 원하는 학교만 자율 채택이 가능하다.

정부는 해당 개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교과서 지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도 현장 반발을 고려해 올해에는 원하는 학교만 AI 디지털 교과서를 자율적으로 채택하게 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자료가 된다면 엄격한 검정 절차를 거칠 수 없으며, 저작권료와 구독료도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채택률이 1학기에는 30∼50% 정도로 시작해 2학기에는 70∼8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AI 디지털 교과서 발행사들은 ‘원안 도입’을 주장하며 학교 자율 채택 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교육부는 발행사와 학교 현장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이재상 천재교과서 상무는 13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다른 AI 디지털 교과서 발행사 5곳과 함께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학교가 (AI 디지털 교과서를) 자율적으로 채택할 수 있게 한다면 행정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며 “향후 발행사 손실이 발생한다면 민사 소송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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