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지난해 KB·우리·농협금융지주 및 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실시한 결과 총 3875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특히 은행 직원들이 브로커와 공모해 돈까지 받은 부당대출이 다수 적발됐다.
금융사들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도 고위험 자산 투자를 계속하는가 하면, 자격도 없는 직원이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등 금융사의 기본인 ‘건전성 관리·소비자 보호’에도 구멍이 뚫린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발표에 대해 “특정 금융사를 질책하려는 목적이 아니다”고 짚었다. 갈수록 조직적이고 교묘하게 이뤄지는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선, 문제점을 서둘러 공유해 금융권 스스로가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부하 직원에 ‘브로커’ 소개…아내 계좌로 ‘뒷돈’
금감원은 이날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결과’ 브리핑을 열고, 지난해 국민·우리·농협은행에서 3875억 원(482건) 규모의 부당대출 사고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우리은행이 2334억 원(101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은행 892억 원(291건), 농협은행 649억 원(90건) 순이었다.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이슈가 된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사건(730억 원) 이외에도 전·현직 고위 임직원 27명이 연루된 부당대출이 1604억 원에 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은행 부행장 A 씨는 같은 교회 교인이던 대출 브로커를 부하 직원에게 소개하고, 해당 직원은 18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을 내어주면서 아내 계좌로 3800만 원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민은행 팀장 B 씨는 시행사·브로커와 공모해 총 892억 원 규모의 ‘작업대출’ 실행한 후 금품을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작업 대출은 은행에 허위 매매계약서 등 가짜서류를 제출해 대출을 받는 대표적인 사기 행위다. 농협은행에서도 지점장·팀장급 직원이 브로커와 공모해 부당 대출 649억 원을 내어준 후 1억3000만 원을 받아낸 정황이 확인됐다.
직원 비리 알면서…눈감아주는 은행들
박충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지난 3일 진행된 사전 브리핑에서 “최근 금융사고 행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은행 직원과 브로커가 공모하는 조직적 범행이 다수 발행하면서, 사고 규모도 대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사고액은 최근 5년간 증감을 반복해 오다 지난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1693억 원 수준이던 금융사고액은 2024년 3분기 2598억 원을 기록하면서 이미 전년도 사고 금액(1783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박 부원장보는 ‘온정적 조직문화’를 금융사고 발생원인 중 하나로 진단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다수의 은행은 직원의 부당 대출을 알고도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또 일부 은행은 직원이 10억~20억원의 금융사고를 내더라도 가장 낮은 견책 수준의 징계를 내리고, 징계 예정자에게도 포상·승진을 시행하는 등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던 것이다.
/뉴스1건전성·소비자 보호까지 ‘구멍’
금감원은 이번 검사를 통해 확인된 ‘부실한 건전성 관리’에 대해서도 강하게 지적했다. 우선 우리금융그룹은 타사 대비 자본비율이 낮은 상황에도 ‘고위험 자산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은행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금융지주가 운영 리스크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전성 관리 문제는 국민은행에서도 나타났다. 국민은행은 해외 자회사에 2000억 원을 송금하면서, 당일 아침 이사회에 우선 보고한 후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사후적’으로 개최했다. 금융사가 정해둔 리스크 관리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건전성뿐만 아니라 ‘소비자 보호’ 규제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에서 투자 권유 자격이 없는 직원이 총 16억6000만원 규모의 파생상품 등을 판매하는 등 자본시장법상 규제를 위반한 사례가 적발됐다고 지적했다.
“금융사 스스로 쇄신 촉구”
박 부원장보는 전날 브리핑에서 “지금도 검사를 통해 적발되지 않은 대형 금융사고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검사를 통해 확인된 문제점을 금융권에 서둘러 공유해 금융사 스스로 쇄신을 촉구해야 한다는 마음이다”며 이번 발표의 취지를 설명했다.
금감원은 그간의 검사에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스스로 되짚어보겠다면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구현 △건전성·리스크관리 강화 △조직문화 쇄신 등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금감원은 조직문화 개선을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권에 누적된 문제점은 지난 수십 년간 고착화된 단기 실적 중심의 조직문화가 주요 원인”이라며 “은행권 단기 실적주의를 완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융권의 자정기능 강화를 위해 준법제보(내부고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임직원의 준법·윤리의식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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