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료공백 피해신고 933건중 ‘연관성’ 인정은 0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20일 16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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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책임 피하려 소극적” 지적

지난해 5월 가슴에 통증을 심하게 느낀 한 환자가 호남권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으나 의료진 부족 등의 이유로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이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약물 처치 등을 받았으나 도착 5~10분 만에 숨졌다. 유족들은 이같은 내용을 보건복지부 환자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했다. 센터는 “의료과실과 관련해서 소송할 수 있다”면서도 “사실상 개인소송으로 진행하는데, 피해와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병원을 떠난 뒤 정부가 “의료공백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민형사상 소송도 돕겠다”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연 지 1년이 지났지만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로 인정된 사례가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단체들은 “피해조사기구를 발족해 의정갈등 기간 발생한 환자 피해를 조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정부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 인정 0건”

2025.02.18. 서울=뉴시스
정부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기 시작한 지난해 2월 19일부터 환자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8일까지 1년간 상담은 6260건이 접수됐으며 이중 피해신고서가 접수된 사례는 933건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공백과의 연관성이 입증된 피해가 0건이라는 통계는 현재 시점까지 유효하다”고 말했다.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받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상담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2월 19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접수된 피해신고서 중 즉각대응팀과 연계된 사안은 11건이었다. 즉각대응팀은 의료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이다. 11건 중 의료공백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복지부는 센터에 접수된 신고 가운데 3건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6월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하던 당시 센터에 접수된 진료 거부 의심 사례 3건이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을 지낸 강희경 서울대병원 교수는 “당시 환자들이 오해했다. 3건 모두 교수들이 진료하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 환자단체 “환자 피해 조사기구 발족해야”

2025.02.10. 서울=뉴시스
피해 신고는 중증 환자를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질환 등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상담 내역’에 따르면 전체 피해신고 932건 중 748건(80%)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했다. 이중 약 절반은 5대 대형병원에서 나왔다. 강 의원은 “더 아프고 절박한 환자들에게 피해가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수 밖에 없는데, 정부가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의료공백으로 치료가 지연될 수 있어 환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 피해 조사 기구를 발족하고 명확한 조사를 시행해 사태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제2의 전공의 사직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환자실·응급실 공백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중환자실 등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의료 공백 방지 법안’을 신속히 발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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