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기 악용 우려…질환교원심의위원회 도입 이후 0건 지역도 있어

  • 동아일보

지난 10일 김하늘 양 피살 사건 이후 긴급 휴교를 했던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가 17일 ,경찰 인력 15명이 배치된 가운데 등교를 시작한 모습. 이날 학교에 나오는 1, 3학년 학생들이 부모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다. 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대전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8살 김하늘 양이 사망한 사건 이후 정부가 정상적인 교직 수행이 곤란한 교원을 신속히 분리하기 위한 ‘하늘이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기존에도 교원 분리 제도가 있었지만 강제성이 없고 ‘낙인찍기’ 우려 탓에 신고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도가 도입 이래 단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지역도 있었다. 

● 제주 울산 등 시행 0회

27일 동아일보가 17개 시도 교육청에 질환교원심의위원회(질환심의위) 개최 횟수와 이유를 파악한 결과 제주, 울산은 제도 도입 이래 단 한 차례도 위원회를 열지 않았고, 경북은 한 번만 연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도입 시기는 지역별로 달랐다. 질환심의위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질환으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려운 교원의 직무 수행 가능 여부를 심의하는 기구로, 문제 교원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위원회가 해당 교원의 상태를 평가해 직권휴직, 면직, 심리 치료 등의 결정을 내린다. 하늘 양을 살해한 교사 명모 씨(48) 같은 교원을 교육 현장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제도다. 

제주도교육청과 울산시교육청은 각각 2016년과 2019년 질환심의위를 도입했는데, 이후 단 한 번도 심의를 열지 않았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 심의를 신청해야 하는데 (제도 도입 이래 심의 신청이)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개최 건수가 적은 다른 지역 교육청의 해명도 비슷했다. 2014년 제도 도입 이래 질환심의위를 딱 한 번 열었다는 경북도교육청과 7년간 5번 연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들도 “기본적으로 심의 신청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낙인찍기 악용 우려… 심의 신청 꺼려

일부 지역은 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탓에 개최가 적었다고 해명했다. 전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제도의 근거가) 규칙(교육자치법규)이다 보니 위원회에 강제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법률, 시행령 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하위법령이다 보니 위원회를 꼭 열어야 한다는 부담이 적었다는 이야기다. 2006년부터 19년간 12번 위원회를 연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심의위 대상자인) 교원이 선제적으로 병가를 쓰고 질병 휴직해 버리면 위원회를 강제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현장에선 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서 더욱 신청을 위축시켰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심의 대상인 교원을 낙인찍거나 배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의 신청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 13일 초등교사노동조합은 하늘이법 제정에 우려 성명을 내며 “법 조항을 악용하는 악성 민원인과 관리자에 의해 담임교사가 부당하게 정신적 문제로 몰려 긴급 분리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질환심의위를 다른 위원회와 통합해버린 곳도 있었다. 경기와 부산, 충북, 경북 교육청은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질병휴직위원회와 통합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휴직위원회는 단순히 교원의 휴직 등을 판단하는 기구다. 부산시교육청은 “2006년 심의위를 설치했다가 ‘법적 근거 없는 위원회 폐지 등 정비하라’는 국가인권위 방침 따라 2021년부터 통합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시교육청이 최근 3년간 통합위원회 연 건 단 한 번뿐이다. 

● 하늘이법, 정신질환 교원에게 ‘도움’이라는 인식 줘야 

국회 교육위원회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질병휴직 교사는 초중고 합쳐 2022년 1313명, 2023년 1447명, 2024년 1973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인 2년간 질환심의위 명목으로 회의가 열린 건 6차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하늘이법 제정을 앞두고 질환심의위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앞서 지속 검사, 적극 개입, 신속 분리를 골자로 하늘이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박남기 광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사 전체 심리 검사는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정신질환 판정 받으면 낙인이 찍히고 불이익받을 거란 게 뻔히 보이는 탓에 질환심의위 심의 신청도 피해갔는데, 전수 검사한들 누가 제대로 조사에 임하겠냐. 문제 교원이 드러나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혜택을 주고 도움이 된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며 “오남용 방지를 위한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 교원을 미연에 방지하려 하기보다는 폭력 등 확실한 이상 징후가 발현한 뒤 신속하게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악용 우려를 피하기 위해 전문가의 개입도 필수라고 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해외에선 정신응급 관련해 학교에 권한을 부여한다”며 “다만 교장이 직접 상황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 보건소 등에 신청해 전문의 검토하에 치료 행정명령을 내리는 해외사례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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