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잡힌 그날, 엇갈렸던 두 표정[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9일 11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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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이 경북 의성과 영덕 지역 산불 주불 진화율이 100%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28일 오후 영덕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김호홍 씨(60)가 현장에서 철수한 뒤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영덕=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일주일간 이어진 경북 산불의 ‘주불 진화 완료’가 선언된 28일 오후.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영덕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김호홍 씨(60)의 마스크 아래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김 씨와 그의 동료 대원 10여 명은 지휘 본부의 철수 명령을 받고 인근 현장에서 돌아와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긴 화마와의 싸움에서 마침표를 찍고 온 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낮으로 이어진 진화 작전에 새겨진 피로를 숨길 수는 없었지만, 지친 모습에도 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무심한 듯,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짧은 격려를 마친 대원들은 다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잔불 진화 대기를 위해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살포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김호홍 씨는 “일주일간 지옥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 다치지 않은 게 제일 기쁘다”라며 “이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여기 서서 단비를 맞을 수 있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김 씨는 이내 출동 대기를 위해 다시 본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8일 오후 영덕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원들이 인근 화재 진화 현장에서 복귀한 뒤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영덕=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8일 오후 영덕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원들이 인근 화재 진화 현장에서 복귀한 뒤 보호장구를 벗고 있다. 영덕=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8일 오후 김호홍 씨(왼쪽 첫 번째)와 동료 대원들이 화재 진압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영덕=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8일 오후 김호홍 씨가 비를 맞으며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영덕=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화마가 잡힌 날, 기쁨과 환호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 한편에는 한 노부부의 울음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안동 주민 전갑수 씨(89)와 그의 아내 김태순 씨(84)는 맏딸의 안부 전화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8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서 주민 전갑수 씨(89•왼쪽)와 김태순 씨(84) 부부가 맏딸과 전화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8일 오전 전갑수 씨와 김태순 씨 부부가 한산해진 임시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지난 26일 자택이 불에 타 대피소로 왔다는 이들 노부부는 대피소에서 하염없이 피해 복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씨는 자녀들의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에게 휴대폰을 가까이 대주며 딸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이내 두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참을 통화한 뒤 전 씨는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재민 텐트 바깥에 나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동 주민 전갑수 씨가 이재민 텐트에서 나와 아들과 통화하고 있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바닥난 체력에도 전 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 씨는 “집이 불에 타는 순간 마을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대피소로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라며 ”목숨이라도 성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양보호사와 3시간 간격으로 아내를 돌봐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쉽지 않다“라며 ”그래도 다섯 자녀가 차례로 돌보러 와줘서 간신히 생활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쥔 휴대폰에서 다시 자녀들의 전화가 울리자 전 씨는 “이게 나와 아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라며 씁쓸한 웃음과 함께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산림청이 경북 의성과 영덕 지역 산불 주불 진화율이 100%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28일 오후 안동시 남후면 일대 야산이 시커멓게 탄 모습이다. 안동=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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