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경남 산청 산불 이재민 대피소인 산청군 단성중학교 급식소에서 대한적십자사 산청군 소속 봉사자들이 점심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산불로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나선 것입니다.”
27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동당마을. 이곳에서 만난 박호규 산청군 읍면체육회 연합회장(65)은 산과 인접한 마을 주택과 밭 곳곳에 호스로 물을 뿌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 회장과 권순경 산청군 신안면 체육회장(58) 등 12명으로 구성된 연합회장단은 산청 산불이 발생한 21일부터 이날까지 9일 동안 자체적으로 확보한 펌프차를 이용해 잔불 진화에 나서고 있다. 권 회장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산불 현장과 가까운 마을을 돌며 물을 뿌리고 받아온 물을 소방펌프차에 채워주고 있다”며 “회장들 모두 생업을 제쳐두면 수십만~수백만 원 손해를 입지만 마을과 주민들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 나섰다”고 말했다.
25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불 현장에서 산청군 읍면체육회 연합회 자원봉사자들이 도로 주변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 박호규 연합회장 등 봉사자들은 산불 발생 첫날부터 자체 확보한 펌프차로 산림 당국을 돕고 있다. 권순경 씨 제공● 산불 첫날부터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대형 산불이 이어지자 박 회장과 권 회장뿐 아니라 산청군 곳곳에선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 산림 당국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같은 날 찾은 산청군 단성중 체육관 앞. 이곳에선 대한적십자사 산청군 소속 봉사자인 강정숙 씨(60)가 실의에 빠진 이웃들을 위해 팔을 걷었다. 그도 이번 산불로 이재민이 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강 씨뿐 아니라 음식을 식판에 퍼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이재민이라고 한다. 단성중학교 급식소에서는 매 끼니 600인분의 식사를 짓는다. 아침·점심·저녁까지 하루 1800인분의 식사를 만드는 셈이다. 이 중 400인분은 진화 작업을 펼치는 진화대원에게 배달하고, 나머지 200인분은 급식소를 찾는 이재민 등에게 제공한다. 강 씨와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5시 반부터 식사를 준비하고 거동이 힘든 어르신들에게는 급식판에 밥을 담아 텐트로 직접 가져다 주기도 한다. 저녁 식사 배식이 끝나면 설거지를 한 뒤 다음날 장까지 본다. 오후 10시를 훌쩍 넘는다.
강 씨의 봉사 활동은 올해로 26년째다. 그는 “1998년 지리산 자락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었을 때 봉사자들의 헌신을 보고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며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다”고 말했다.
경남도자원봉사센터도 22일부터 매일 870여 명이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구호물품 전달과 식사 등을 지원했다. 경남도내 시군자원봉사협의회와 경남약사회 등 곳곳에서도 응급의료 지원과 심리 상담 등을 이어왔다. 황명희 산청군 시천면 자원봉사협의회장은 “우리 마을 산이 타고 있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봉사 활동을 하면서라도 아픔을 나누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 피해 현장에 이어지는 민관 온정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민관의 따뜻한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창원시는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돕기 위해 2000만 원 상당의 긴급 구호물품을 지원했고, 진주시도 이웃 산청군의 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펼쳤다. 의령군도 라면과 간편식 등 1000만 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산청군에 전달하는 한편 산불진화대원 20명, 장비 4대 등을 지원하는 등 피해 복구 지원에도 나섰다. BNK경남은행, 농협 경남본부도 산청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긴급 지원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