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일어나쇼!” 산불에 어르신 들쳐업고 뛴 ‘쑤기’, 장기체류 비자 받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6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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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금양호 선원으로 일하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수기안토 씨(31)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마을에서 ‘쑤기’로 불린다는 그는 지난달 25일 경북 산불 당시 고령의 어르신들을 업고 구조한 공로로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얻게 됐다. 수기안토 씨 제공
경북 영덕군 금양호 선원으로 일하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수기안토 씨(31)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마을에서 ‘쑤기’로 불린다는 그는 지난달 25일 경북 산불 당시 고령의 어르신들을 업고 구조한 공로로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얻게 됐다. 수기안토 씨 제공

“마을 돌아 댕기면서 ‘할매요, 지금 영해까지 불이 다 왔어. 빨리 일어나쇼!’ 하고 소리 지르고 막 들쳐업고 나왔지예.”

지난달 경북 영덕군으로 대형 산불이 번졌을 때 마을 어르신들을 대피시킨 인도네시아 국적의 금양호 선원 수기안토 씨(31)가 6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말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오후 10시경 영덕군 축산면에 산불이 넘어 오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귀가 어두운 어르신들을 깨우고 대피를 도왔다. 수기안토 씨는 “전화가 미친 듯이 오는데도 어르신들이 안 들리니까 못 받고 있더라”며 “대신 전화를 받아 ‘할매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쇼’라고 전했다”고 했다.

경북 영덕군 금양호 선원으로 일하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수기안토 씨(31)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수기안토 씨 제공
수기안토 씨를 포함해 역대 최악의 산불이 난 경북에서 주민 대피를 도운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3명이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얻게 됐다. 이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 차장은 6일 중대본 15차 회의를 열고 “이번 산불 때 대피에 어려움을 겪던 할머니 등을 도운 인도네시아 국적의 세 분에게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이웃의 생명을 구한 분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특별기여자(F-2-16) 체류자격을 얻게 된 수기안토 씨는 지난달 25일 산불이 마을로 확산하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직접 업고 인근 방파제로 대피시켰다. 영덕군 어촌계장 유명신 씨(50)는 “마을에서도 ‘심성이 착한 청년’으로 알려져 있다”며 “주민들이 친근하게 ‘쑤기야’ 또는 ‘쑥아’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어르신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고, 마을 일을 잘 도와서 형광등 전구가 나가도 다 그에게 고쳐달라고 할 정도”라며 “돈 많이 주는 곳 가서 일하래도 ‘여기가 좋다’며 계속 있더라. 가족이나 다름 없는 친구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게 돼서 좋다”고 덧붙였다. 수기안토 씨는 마을사람들과 친해지며 사투리도 익혔다고 한다.

5살 아들을 둔 수기안토 씨는 어업 분야 취업 비자로 입국해 3년 뒤면 한국을 떠나야 했지만, 이번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받게 되면서 국내 장기체류가 가능해졌다. 영덕군 축산면에서 고령의 어르신들을 부축해 대피시킨 레오 씨, 경북 영덕군에서 구조를 도운 비키 씨도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받았다. 한편 중대본에 따르면 4일 기준 영남권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성금이 92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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