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물가 상승에…허리띠 졸라매는 대학생
서울 대표 대학가 상권에서 한산한 거리로 전락
“無권리금에도 안 들어와”…고민 커지는 상인들
ⓒ뉴시스
“요즘은 새 학기 그런 거 없어. 학생들이 안 와. 이 옆에도 상가 내놓은 지 5년은 된 것 같은데 비어있어. 학생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정문 인근에서 13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60대 주인에게 “새 학기인데 장사가 잘 되냐”고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는 “들어올 때는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하나도 못 받고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예전에는 학생들이 꽉 차서 거리가 북적거렸는데 요즘엔 저녁에 술 먹는 사람 자체가 없다”고 푸념했다.
9일 오전 9시께 찾은 신촌은 새 학기 답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 양쪽으로 벚꽃이 만개했지만 등교하는 학생들은 걸음을 재촉할 뿐 대학가 상권 다운 활기찬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메인 거리 곳곳에는 2~3층 건물들에는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역에서 1분 거리에는 4층짜리 건물이 통으로 비어 있기도 했다. 한때 카페로 운영됐던 1층 상가 자리는 미처 인테리어 정리도 마치지 못한 채 건축 자재 쓰레기와 먼지가 나뒹굴었다.
신촌에서 53년째 대대로 이어진 삼계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도 새 학기를 맞았지만 방학과 비교해 전혀 오르지 않은 매출에 고민을 겪고 있다.
사장 A씨는 “신촌 일대에서 장사한 지 벌써 13년이지만 계엄 이후로 소비 심리가 죽었는지 사람이 없다”며 “우리 가게가 이 골목에 제일 오래 있었는데 금방 망하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이 저녁을 집에서 먹기 시작하고 돈을 안 쓰니까 망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등록금 인상에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대학가 상권이 휘청이고 있다. 전국 대부분 대학이 16년 만에 등록금 인상한 데 이어 소비자 체감 물가까지 오르면서 대학생들의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4년제 사립대 151곳 중 79.5%인 120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국공립대학 39곳 중 11곳 역시 등록금 인상에 동참했다. 특히 사립대 등록금은 전년 동월 대비 5.2% 오르면서,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여기에 외식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들은 비용 부담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최근 3개월 연속 물가 상승률이 2%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1%를 유지했으나 올해 들어 대폭 오른 셈이다.
이날 신촌에서 만난 연세대 4학년 신영진(24)씨는 “식사 한 번에 1만원 이상이어서 밖에서 밥을 잘 안 먹게 된다”며 “예전에 자주 가던 신촌 냉면 가게가 한 그릇에 8000원이었는데 1만원으로 오른 것을 보고 안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교 4학년인 김성엽(25)씨도 식비 걱정에 밖에서 식사를 하기 전에 계좌를 확인하게 됐다. 그는 “자취 중이지만 개강 이후 배달음식도 1~2번 밖에 시켜먹지 않았다”며 “커피 값도 많이 올라 최근 대량으로 주문해 텀블러에 담아 학교에 등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촌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상권의 침체가 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심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당초 신촌 메인 거리 매장들은 1층 10평 기준 권리금 3억원 이상이 붙었지만 지금은 무(無)권리금에도 아무도 계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신촌은 외국인의 관광 수요가 전혀 없이 내국인 대학생의 수요가 대부분이어서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인근 대학가 상권인 홍대가 외국인 여행객 방문 수요로 타격을 상쇄한 것과 다른 양상이다.
그는 “예전에는 신촌이 10대 상권 안에 꼽혔는데 이제 홍대에게 뺏겼다”며 “신촌은 계약 기간이 남아 못 빼는 가게가 대부분으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약 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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