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돌봐줄 사람 없어서 입원”… 요양병원 건보 낭비도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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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된 ‘돌봄 부담’]
65세 이상 입원 30만명, 매년 증가… 등급판정 없이 입원되고 건보 혜택
‘사회적 입원’ 늘며 재정 부담 커져… 정부 “치료 환자 위주로 기능 재정립”

“간병도 간병이지만 제때 끼니를 챙겨 줄 사람이 필요해서 시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어머니와 사별하셨고 고령이라 친구분도 거의 남지 않으셨어요.”

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백모 씨(54)는 3년 전 방광암 수술을 받은 80대 시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시아버지는 수술받은 뒤 암이 완치됐고 거동도 가능하다. 백 씨는 애초 시댁을 오가며 반찬을 해드리고 직접 부양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방에 혼자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말동무라도 만드시라고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다. 시아버지를 모시느라 지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일상생활이 가능한데도 가정 등에서 돌보기 어려워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65세 이상은 30만539명으로 전체 입원 환자(35만2812명)의 85.2%에 달했다. 요양병원 전체 입원 환자 중 노인 환자 비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80.7%에서 2021년 82.1%, 2022년 84.8%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 입원 노인 중 상당수가 사회적 입원 환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회적 입원이란 의학적으로 꼭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도 병원에 머물며 돌봄을 받는 것을 뜻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고, (가정 등에서) 돌봄 공백으로 치료가 끝난 뒤에도 요양병원에 남아 있는 사회적 입원이 늘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입원이 늘어난 이유는 역설적으로 요양병원이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가장 쉽고 저렴한 선택지라서다. 요양원에 입소하려면 원칙적으로 장기요양보험에서 1, 2등급 판정을 받아야 하지만 요양병원은 등급 판정 없이도 입원할 수 있다.

등급 판정을 받지 않고 요양원에 들어가려면 비용을 100%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요양원 대신 요양병원에 입소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저렴하다. 경기 군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일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장기요양보험에서 1, 2등급 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건보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사회적 입원을 막기 위해선 요양병원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요양병원은 장기요양보험에 연계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돌봄을 목적으로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는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장기요양보험에서 1, 2등급 판정을 받지 않아도 입원할 수 있어서 요양병원이 노인 돌봄을 위한 손쉬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단순히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입소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 위주로 운영되도록 기능을 재정립할 계획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발표한 초고령화 대응 방안에서 요양병원을 의료 중심형이나 치매 안심형 등을 중심으로 기능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요양병원 기능을 재정립하는 동시에 의료, 요양, 돌봄이 연계된 통합 지원을 통해 사회적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될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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