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 든 계엄군 앞에 각목 든 시민들… 5·18 시민 촬영 영상 첫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7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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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성 씨가 5·18민주화운동 나흘째인 1980년 5월 21일 오전 2시간 동안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당시 가톨릭 센터) 앞 아치형 현수막 구조물 위에서 촬영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신문 기자가 찍은 사진에 문 씨(빨간색 원)가 보인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21일 오전,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 직전 상황을 시민의 시선으로 담은 원본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27일, 시민 문제성 씨(70)가 43년 전 촬영한 5분 40초짜리 8㎜ 영상 기록물을 공개했다.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하기 직전 상황을 편집 없이 담은 것으로, 기존 영상들과 달리 신군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원본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문 씨는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금남로 전남도청 앞 대치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그는 신도리코 직원이었으며, 사내 포상으로 받은 8㎜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에 나섰다. 촬영 장소는 현재의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건물(당시 가톨릭센터) 앞 아치형 구조물 위였다.

문제성 씨는 5·18민주화운동 나흘째인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 반부터 오전 11시 반까지 두 시간 동안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문 씨가 당시 필름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문 씨가 촬영한 영상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계엄군에 의해 숨진 희생자 2명의 시신을 손수레에 실어 항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당시 구용상 광주시장에게 항의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다. 이어 시민군이 장갑차를 몰고 금남로에서 전남도청 방향으로 진출하자, 계엄군 11공수여단 61·62대대가 후퇴하면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장면이 전개된다.

최루탄 연기에 밀려 시민군 장갑차가 후진하자, 시민들은 손수레에 실린 희생자 시신을 지켜내며 현장을 벗어났다. 이후 시민군이 몰던 군용 차량이 잇따라 전남도청 방향으로 진입했고, 계엄군은 계속 후퇴했다.

이날 금남로에는 약 10만 명의 시민과 공수부대 4개 대대가 대치 중이었다. 시민과 계엄군 간 거리는 약 50m로 좁혀졌으며, 하늘에는 헬기와 수송기(C-123)가 금남로 상공을 빠르게 선회했다. 계엄군은 실탄을 계속 배분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각목과 화염병, 돌로 맞섰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이 영상이 촬영될 당시 장갑차 2대 중 한 대에서는 기관총에 실탄을 장착하는 장면이 포착된 사진도 있다”며 “계엄군이 실탄으로 무장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각목을 들고 저항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긴박한 대치 상황은 정오까지 이어졌고, 1시간 뒤인 오후 1시경 계엄군 저격병의 조준 사격과 집단 발포로 금남로 상황은 급변했다. 이때 금남로에서만 시민 4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발포 직전 상황을 사실 그대로 담고 있어 5·18 당시 정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연구위원은 “기존의 많은 5·18 영상들이 신군부에 의해 편집됐지만, 이번 영상은 시민의 시선에서 촬영된 편집되지 않은 원본”이라며 “당시 상황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기록물”이라고 말했다.

문제성 씨는 5·18민주화운동 나흘째인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 반부터 오전 11시 반까지 두 시간 동안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문 씨가 당시 카메라를 보여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차영귀 서강대 서강국제한국학선도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번 영상은 5·18기록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문 씨는 “그날의 광주를 제대로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제라도 진상 규명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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