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효 “받은 사랑 되돌리는 마음”…정명근 “사람 중심 행정의 뿌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9일 2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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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효 스님-정명근 화성시장 ‘효 가치’ 대담
정조의 애틋한 효심이 깃든 도시, 화성
세대 단절 시대…‘효’로 공동체 회복 시도
AI 기반 스마트 도시에서도 효의 가치 여전

화성시 제공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가슴에 묻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보며 어린 정조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품었다. 그 애틋한 마음은 평생 그를 지배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지금의 경기 화성에 융건릉을 조성하고, 천년 사찰 ‘용주사’를 능침 사찰(왕릉 제사와 능역 보호를 맡은 사찰)로 삼았다.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화성은 정조의 심장과도 같았다. 유교적 효행을 넘어, 가슴속 애통함을 불교적 자비로 승화하려 한 인간적인 표현이었다.

효는 화성시가 추구하는 도시정책의 뿌리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효의 도시 화성’을 새로운 시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제 효는 화성시가 ‘사람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시정 운영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전통적 가치인 효 사상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가족주의가 희미해지고 세대 간 갈등은 심각하다.

점점 허물어지는 효 사상에 대해 용주사 주지 성효스님과 정명근 화성시장이 가정의 달을 맞아 23일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효의 가치’를 주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효의 본질과 실천에 대해 들어봤다.

화성시 제공
―효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효 스님(이하 스님)=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탱하는 ‘애틋함’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는 일방적인 개념이 아니다. 효는 본인이 ‘받아본 것’을 되돌려주는 데 있다.

▽정명근 시장(이하 시장)=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효의 의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점이 애석하다. 효가 단지 과거의 미덕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절실한 삶의 윤리라는 점을 시민께 널리 알리겠다.

―부모 세대와 지금 효의 기준이 다른가.

▽스님=전혀 다르지 않다. 다르면 안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관계는 한마디 말로도 쉽게 깨질 수 있는 유리 같은 관계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다투거나 상처를 주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 자체로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이것이 효가 지닌 본질적 힘이다. 이 관계의 지속성이 공동체를 지탱한다.

화성시 제공
인공지능(AI) 시대에 효는 옛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스님=젊은 세대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부모도, 스승도 믿지 않고 AI와 알고리즘을 통해 정보를 판단하고 행동한다. 기술은 효율을 따르지만, 인간은 감정을 통해 관계를 맺는 존재다. ‘효’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다움’의 정점이다.

▽시장=사람 냄새나는 공동체가 살아있어야 진정한 미래도 지속 가능하다. 화성시가 추구하는 스마트 도시 역시 결국 ‘사람 중심의 따뜻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효’는 곧 공동체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겠다.

―지자체가 효의 실천을 어떻게 독려할 수 있나.

▽스님=효를 따로 실천한다는 생각이 잘못됐다. 효는 곧 기억이고, 습관이며, 삶의 태도다. 부모로부터 지극한 애정을 받고 자란 이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실천한다. 반대로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뜻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일상에서 지극함을 다하는 모든 행동이 ‘효’다.

▽시장=큰스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저 역시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시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게 느껴진다. 효의 실천을 위해 범시민적인 차원의 캠페인으로 효 문화를 확산하고 가족 간의 애틋함을 복원시켜 나가겠다.

화성시 제공
―효 사상을 시정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스님=화성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젊은 도시다. 눈부시게 상승하고 있는 만큼, 정신적 중심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효’는 그 중심에 놓여야 할 가치다. 아동과 청년이 많은 도시일수록, 관계의 뿌리를 가르치고, 공동체를 존중하는 문화를 심는 일이 중요하다.

▽시장=큰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화성시가 지닌 역사적 상징성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정신적 방향성에 대해 다시금 깊은 인식을 하게 된다. 시장으로서 화성을 ‘정조의 도시’로 성장시키려 한다. 효의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 ‘화성’을 만들겠다.

―‘미래도시’ 화성과 효의 연관성은….

▽스님=‘효’는 ‘과거의 전통’이 아니라 ‘미래의 해답’이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향한 ‘깊은 마음’, 즉, 효의 실천일 것이다. 화성시가 지향해야 할 미래는 ‘기술에 기반한 스마트 도시’, 그리고 ‘효에 기반한 따뜻한 공동체’여야 한다. 그 가치를 바탕으로 성장한다면 화성은 큰 도시가 아닌 ‘깊은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

▽시장=화성시는 AI 기반의 산업을 육성하고, 미래형 도시를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빠진다면 결국은 껍데기뿐인 도시가 될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 화성시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기술은 그 공동체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화성시 제공
―공직자에게도 효의 자세가 필요할까.

▽스님=불교에는 ‘하심(下心)’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는 자세다. 수행자의 기본이다. 공직자도, 정치인도 결국 수행자처럼 자신을 던지고, 희생하며, 봉사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입은 옷만 남고, 그 안의 사람됨은 사라지게 된다.

▽시장=울림이 크다. 공직의 자리는 때로 나도 모르게 흔들릴 때가 있다. 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을 비우는 태도’를 늘 되새기겠다. 권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효처럼 ‘관계를 지키고, 마음을 주는 행정’을 실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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