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기상청, 올 여름 기상 전망 분석
봄철 높았던 북인도양 해수면 온도, 평년 이하의 유럽 적설량 등 영향
한반도 상공에 고기압 자리잡을 듯
누적된 더운 공기는 폭염으로 연결… 전국적으로 쉼터 운영 등 대비 나서
1분기 지구 평균 온도 역대 두 번째
‘봄 폭염’ 등 이상 고온에 각국 비상… UAE, 낮 최고기온 50도 웃돌기도
지난해 6월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 그늘막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시민들이 햇볕을 피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열대야는 20.1일로 역대 1위를, 폭염은 30.1일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올해도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동아일보DB
21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23도를 기록하며 근대적 기상 관측을 시작한 지 118년 만에 ‘가장 더운 5월 아침’으로 기록됐다. 올해 1∼3월 지구 평균 온도는 역대 두 번째로 더웠다.
기상청은 여름철 3개월 기후 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여름도 평년보다 더울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올해도 폭염이 예상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기상 전문가들은 “한반도 주변 고기압이 동시에 영향을 주거나 겹겹이 쌓이면 한반도에 극심한 불볕더위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도 기록적 폭염에 대비할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 기상청 “올해 여름 평년보다 더울 확률 높아”
기상청은 최근 자체 기후 예측 모델(GloSea6 앙상블)과 세계기상기구(WMO) 다중모델을 분석해 올해 여름 기상 전망을 공개했다. 기상청 모델로는 6∼8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63∼79%로, WMO 모델로는 58∼71%로 예측했다. 두 모델로 평균을 계산하면 6월이 평년보다 더울 확률은 58%, 7월은 64%, 8월은 71%다. 6∼8월 평년 기온은 각각 21.4도, 24.6도, 25.1도다.
기상도를 살펴보면 한반도 주변에는 여름 내내 고기압이 강화된다. 조경숙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봄철 평년보다 높았던 북인도양 해수면 온도가 6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유라시아의 눈 덮임 정도 등 다양한 기후 요소들이 한반도 기상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 데워진 공기가 대기로 상승하며 상공에 고기압이 만들어진다. 기압계는 번갈아 형성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기압 주변에는 고기압이, 고기압 주변에는 저기압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북인도양 고기압은 아시아에 저기압을, 이렇게 생긴 저기압은 다시 동아시아에 고기압을 만든다.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타고 한반도에는 남쪽 고온다습한 기류가 들어온다.
7월에는 남인도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가 국내에 영향을 미친다. 북서태평양에 저기압성 순환이 강화되면서 한반도 부근으로 고기압성 순환이 생긴다. 박미영 기상청 기후예측과 기상사무관은 “남반구에 있는 남인도양의 해수 온도 상승이 어떤 원리로 한반도에 더위를 불러오는지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다만 통계적으로 남인도양의 봄 수온이 평년보다 높으면 한반도의 여름이 더 더워지는 패턴을 보였다”고 말했다.
8월에는 봄철 유럽에 평년보다 적은 눈이 쌓였던 점이 국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유럽에 눈이 적게 덮여 있으면 지면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열이 많아 해당 지역의 상공에 고기압이 발달한다. 이 고기압의 연쇄 작용으로 한반도 상공에도 고기압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봄철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열대 서태평양은 6∼8월 전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해양 데이터를 살펴보면 현재 한반도 주변 해역은 평년 대비 수온이 낮지만, 열대 해역 서쪽 수온이 상당히 높은 상태”라며 “이 지역에서 데워진 공기가 대류 현상에 의해 결국 북동쪽으로 하강하고 북태평양 고기압을 발달시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열대야는 20.1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폭염일수는 30.1일로 역대 2위였고, 한반도 인근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2.7도 높았다. 이 같은 기록적인 폭염을 불러온 요인 중 하나는 한반도 상공을 뒤덮은 ‘이중 열돔’이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장은 “한반도 중심에 대기 상층부터 지상까지 내려오는 키 큰 고기압이 형성되면 고온의 공기가 지속적으로 누적돼 폭염으로 발달한다”고 말했다.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동시에 확장되면 상층부터 지상까지 고기압이 겹겹이 쌓이며 하강기류가 강화돼 기온이 급격히 상승한다. 여기에 푄 현상(바람이 산맥을 오르내리며 고온 건조해지는 현상)의 영향을 받는 영서형 폭염 등 지형에 따른 국지적 폭염이 더해지며 더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한다.
폭염연구센터가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올해 여름 폭염 일수를 예측한 결과 전국 평균 17∼21일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평년(10.13일)보다 일주일 이상 길다. 이 교수는 “지난해보다는 해수 온도가 낮은 편이라 이번 더위가 지난해의 기록을 또 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올여름도 평년보다 상당히 더울 것이다. 폭염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여름철 폭염이 극심해지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과거 더위병으로 여겨진 온열질환자는 폭염이 심해지면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소방청에 따르면 온열질환으로 인한 출동은 2020년 686건에서 지난해 3164건까지 증가했다. 병원 이송 환자도 2020년 646명에서 지난해엔 4배가 넘는 2698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52.3%가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고령층은 온열질환이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고령층 환자 비율이 높은 지역은 경북(64.6%), 경남(61.3%), 서울(57.0%), 전북(55.7%), 충남(55.2%) 등이었다.
소방청은 올여름 폭염에 따른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국 1660대 119 구급차에 얼음 조끼와 소금, 물 스프레이, 전해질용액 등 불볕더위 대응 구급 장비를 비치할 방침이다. 질병관리청은 폭염 대비 건강 수칙으로 △가벼운 옷을 입는 등 시원하게 지내기 △물 자주 마시기 △더운 시간대에는 활동 자제하기 △폭염특보 등 매일 기온 확인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일찍이 여름 대비에 나섰다. 서울시는 10월 15일까지 5개월간 여름철 종합대책을 추진한다. 누구나 폭염으로부터 대피할 수 있는 쉼터인 기후 동행 쉼터 481곳을 운영한다.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 어르신 4만여 명에게 사회복지사나 생활지원사가 하루 이틀 단위로 안부를 확인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중 노인·영유아·장애인·중증질환자·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에 냉난방 비용을 지원한다.
9월 30일까지 폭염대책기간을 운영하는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기후보험 제도를 시행한다. 열사병, 일사병 등 온열질환을 진단받은 도민은 누구나 보험금 10만 원을 받는다. 기후 취약계층 16만여 명은 온열질환 입원비, 기상특보 시 의료기관 교통비 등 추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 “지구촌 역대 두 번째 더운 여름 될 것”
연초부터 시작된 이상 고온 영향으로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둔 국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국 미네소타주는 이달 초 기온이 32도까지 오르며 종전 기록을 한 달 이상 앞당겼다. 미 국립기상청(NOAA)은 이달 텍사스주에서 38도에 이르는 ‘봄 폭염’이 발생하자 700만 명이 넘는 주민에게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 NOAA 기상예보관은 USA투데이에 “올여름 역사적인 폭염이 닥쳐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후 과학자인 실비아 디 휴스턴라이스대 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폭염과 같은 재난은 공중 보건을 서서히 악화시키는 일종의 느린 폭력”이라며 정부에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중동에도 때 이른 폭염이 덮쳤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낮 기온은 이미 50도를 넘어섰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달 아부다비의 일부 지역에서 낮 최고기온이 50.4도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2003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뒤 가장 높은 기온이다. 기존 최고기온은 2009년의 50.2도다. UAE는 지난달 낮 평균기온도 42.6도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일본은 기록적인 폭염을 앞두고 여름철 가정용 수도 요금 감면에 나섰다.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도쿄는 여름철 4개월간 가정용 수도 기본요금을 받지 않을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고물가에 시달리는 가계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라고 전했다.
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카본 브리프’에 따르면 올 1∼3월 전 지구 평균 온도는 1.53도로 역대 두 번째로 더웠다. 엘니뇨 현상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분기 역대 1위 기록(1.57도)보다 0.04도 낮다. 카본 브리프는 “지구 표면 온도를 보고하는 많은 과학 단체가 올해 1∼3월이 역대 가장 더운 3위 안에 들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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