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충남 보령우체국 소속 조미정 집배원이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에 사는 박옥희 씨(86)에게 경기도에 사는 외손녀가 우체국 용돈배달 서비스를 통해 보낸 현금을 전달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여그서는 집배원이 은행이여. 육지 가서 돈 뽑을라믄 배 타고 차 타고 3시간은 걸린다니께.”
지난달 28일 오후 충남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에서 만난 박옥희 씨(86)는 조미정 집배원이 건넨 흰색 등기봉투를 오른손에 쥐고 이렇게 말했다. 봉투 안에는 경기도에 사는 외손녀가 우체국 용돈배달 서비스를 통해 보낸 현금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박 씨는 “섬에는 은행도 없고 돈 찾는 기계(ATM)도 없다”며 “집배원은 은행도 되고, 말벗도 되고, 소식도 전해주고 만능”이라고 했다.
우체국 용돈 배달은 신청인이 지정한 사람에게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서비스다. 은행 점포가 없는 외진 곳에 사는 사람이나,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사람들이 편지를 받듯, 현금을 받을 수 있다. 등기 비용과 수수료를 내면 편지와 함께 한 번에 최대 100만 원까지 보낼 수 있다. 접수하면 다음 날까지 배달된다. 배달 사고가 나면 우체국이 전액 보상한다. 조 집배원은 “단순히 돈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관심까지 보태려고 노력한다”라고 했다.
● 복지 사각지대 발굴하는 등기
우정사업본부는 전국 3330개 우체국과 1만8497명의 집배원을 활용해 다양한 공공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건 복지등기다. 지방자치단체가 공과금이 밀리거나, 1인 가구 등을 대상으로 복지 안내문을 등기 우편물로 보내면 집배원이 방문해 간단한 면담 등을 통해 생활 실태를 파악해 지자체에 회신한다. 2022년 7월 부산 영도구를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산, 충청, 전남, 경북, 전북, 강원, 제주 등 86개 지자체와 협약을 맺었다. 등기 비용 4000원은 지자체와 우정사업본부가 절반씩 부담한다.
이날 부여우체국 소속 정연호 집배원은 우체국에서 9.4km 떨어진 1인 가구 조만호 씨(71) 집에 들렀다. 정 씨는 복지등기우편이라는 글씨가 적힌 봉투를 조 씨에게 건네며 “불편한 건 없어요. 식사는 잘 챙겨 드시죠. 살림 상황은 어떠셔요”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휴대정보단말기(PDA)에 조 씨 대답을 꼼꼼히 입력했다. 파악된 내용은 나흘 뒤 군청에 취합된다. 군은 이를 바탕으로 손쉽게 위기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조 씨는 “넉 달 전 앞집에 살던 이웃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적적한데 집배원님이 와서 아들처럼 대해주니 텅 빈 마음이 채워진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치매 환자나 자립준비 청년에게도 복지등기를 확대해 사각지대와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총 9만7552가구에 복지등기가 배달됐고, 이 가운데 3만6720가구가 기초연금, 의료비 같은 복지 지원을 받았다.
● 환경지킴이 우체통 폐의약품 수거
일부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에 있는 폐의약품 수거함뿐 아니라 우체통에도 폐의약품을 넣으면 된다. 유통기한이 지나 사용할 수 없는 폐의약품은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마구잡이로 버리면 약품 물질이 땅속이나 물속으로 들어가 환경오염과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다. 우체통 폐의약품 회수 서비스는 2023년 세종과 서울, 전남 나주에서 시범 운영한 뒤 현재 전국 229개 지자체 가운데 53곳이 참여한다.
우체국에 있는 폐의약품 회수 전용 봉투나 우체국형 조제약 봉투, 일반 봉투에 ‘폐의약품’이라고 쓰고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물약은 다른 우편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어 가루나 딱딱한 형태의 약만 가능하다. 우체통에 모인 약은 지자체에 전달돼 소각 처리된다. 폐의약품 수거 비용 520원은 우정사업본부가 75%를 지원하고 나머지 25%는 지자체 몫이다. 2023년 1만8977건이던 회수량은 이듬해 5만7493건을 기록했다. 배진수 우정사업본부 공공사업담당은 “커피캡슐도 전용봉투에 담아 우체통에 넣거나 우체국 창구로 가져오면 모아서 재활용한다”며 “전국을 누비는 집배원과 촘촘한 우체국 물류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적 역할을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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