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350만 시대, 수십마리 입양후 방치 ‘애니멀 호더’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7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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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못하고 버리는 등 학대해도
동물은 민법상 ‘소유물’로 간주
주인이 거부하면 조사조차 못해
“동물 학대 파악-제재 제도 필요”

지난달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대형 트럭 주차장 뒤편에 누군가 기르던 고양이 29마리와 강아지 20마리가 방치돼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제공
지난달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대형 트럭 주차장 뒤편에 누군가 기르던 고양이 29마리와 강아지 20마리가 방치돼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제공
지난달 5일에서 7일 사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역삼동 일대에서 한 가정에서 키우던 것으로 추정되는 강아지 19마리가 사흘에 걸쳐 길가, 지하 주차장 등에서 유기된 채 발견됐다. 다양한 품종의 강아지들은 털이 엉켜 눈과 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치된 상태였다. 누군가 한꺼번에 입양한 뒤 감당하지 못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반려동물 인구가 크게 늘면서, 이처럼 돌볼 능력을 넘어선 동물을 방치하는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이 민법상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현실이 이런 학대와 방치를 막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 법상 ‘물건’… 주인 거부하면 조사 못 해

‘애니멀 호더’는 물건을 쌓아두듯 동물을 과도하게 들이면서도 돌보지 못해 방치·학대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해 2월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40대 남성이 반려견 21마리를 집 안에 방치한 채 이사를 떠나 그중 세 마리가 굶어 죽었다. 이 사건은 동물보호단체의 신고로 알려져 구조된 반려견들이 보호소로 옮겨졌다. 해당 남성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았다.

그러나 이런 애니멀 호더 사건 대부분은 명백한 학대 증거가 있어도, 주인이 “내 재산”이라며 거부하면 조사조차 어렵다. 지난해 12월 서울 광진구에서 30마리가 넘는 개를 방치한 중년 남성이 있었지만, 구청 직원들은 집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돌아섰다. “옆집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심하다. 시체 썩는 냄새도 난다”는 주민 신고로 출동했지만, “돌아가라”는 집주인의 말에 약 20분간 실랑이만 벌이다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동행했던 동물보호단체 ‘카라’ 김영환 교육구호팀장은 “문 너머로 동물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도, 주인이 거부하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처럼 동물 학대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이나 강제 조치가 어려운 것은 민법이 동물을 단순한 ‘물건’으로 규정해 주인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보장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학대 정황이 드러나도 처벌은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동대문구 사건의 가해자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반려동물 350만 시대 “법적 지위 올려야”

이런 가운데 동물 학대 사건은 계속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4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등록된 반려견·반려묘 수는 349만1607마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도 지난해 1293건으로 2023년(1146건)보다 12.8%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애니멀 호더 사건도 함께 늘고 있을 것으로 동물단체들은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2대 총선에서 민법 개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관련 법안은 1년째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은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동물의 법적 지위를 ‘생명 있는 존재’로 격상해 소유권의 방패를 약화시키고, 공권력이 적극 개입할 수 있게 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로 이어질 수 있고, 애니멀 호더 사건은 주변 주민의 건강과 위생도 해친다”며 “반려동물 등록제를 강화해 지자체가 애니멀 호더를 신속히 파악하고 제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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