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중구 신당동 봉제거리에 있는 한 폐업 봉제업체의 사무실. 각종 집기와 물품 꾸러미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봉제거리의 한 공장. 바삐 돌아가야 할 재봉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공장 관계자는 “일감이 없어 1년 중 9개월은 쉬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엔 ‘사무실 임대’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꼈다. 한때 창신동과 더불어 ‘한국 봉제산업의 메카’라 불렸지만 활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앞서 3일 벌어진 ‘신당동 봉제공장 화재 사건’의 발단이 공장 경영 어려움과 임금 체불로 나타났다. 불황을 이기지 못한 공장주가 갈등 끝에 불을 질러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봉제업계 관계자들은 2, 3년 전부터 시작된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알테쉬)의 습격과 값싼 중국산 의류의 수입 확대가 서울 봉제산업에 타격을 입혔다고 입을 모았다.
8일 패션봉제산업상생협의회에 따르면 신당동 봉제거리에는 2022년만 해도 2700여 개의 업체가 있었지만 최근까지 700곳가량이 문을 닫았다. 방화 사건이 벌어진 봉제공장에서 근무했던 나모 씨(53)는 “불황으로 올해 1월부터 일감이 줄었다”며 “(사망한) 근로자도 2주 치 일당이 밀려 있었고, 사장과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당동에서 20년째 봉제공장을 운영 중인 이기선 씨(54)는 “지난해에는 매출이 평년 대비 50% 이상 급감했다”며 “건강보험료조차 내지 못해 통장이 압류될 위기”라고 밝혔다.
값싼 중국산 완제품들은 2023년경부터 알테쉬를 통해 국내에 물밀듯이 수입됐다. 2021년 4분기(10∼12월) 2658억 원가량이던 중국 의류 및 패션 관련 상품 해외직접구매액은 2023년 4분기 6214억 원으로 133% 증가했다. 한국에서 특정 옷 디자인이 유행하면 일주일 뒤 중국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완제품이 생산됐고 한국으로 수입됐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 온라인 쇼핑몰 업자들도 중국 직구를 선호한다”고 했다.
업체가 어렵다 보니 임금 체불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의류 제조업을 포함하는 제조업 분야의 임금 체불은 2022년 4554건에서 지난해 5609건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봉제산업이 가격 경쟁력과 인건비에서 중국산에 밀리는 만큼 경쟁력을 강화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K뷰티(화장품)가 한류로 국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패션도 한류라는 후광효과를 브랜드에 반영해야 한다”며 “품질이나 디자인 역량을 브랜드와 함께 끌어올리는 한편으로 브랜드 업체와 국내 제조업과의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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