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주차, 배 나와도 못 앉아”… 주인 잃은 ‘임산부 배려석’

  • 뉴시스(신문)

코멘트

지난해 임산부 배려석 불편 민원 6286건, 일 평균 17.2건
‘비워두기’ 권장하지만 “자리 양보 없어” 불편 목소리
“강제적 규정보다는 스스로 배려하는 문화 자리잡아야”

‘임산부의 날’을 맞은 10일 오후 운행중인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다. 2017.10.10 뉴시스
‘임산부의 날’을 맞은 10일 오후 운행중인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다. 2017.10.10 뉴시스
임산부의 대중교통 이용 편의를 위해 지하철 칸마다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비임산부 착석 등으로 인한 불편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비워두기를 권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제적인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임산부 배려석 관련 불편 민원은 총 6286건이다. 일 평균 17.2건이 접수된 셈이다. 민원은 비임산부가 착석해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는 2021년 7434건, 2022년 7334건, 2023년 7086건 등에 비해 소폭 줄어든 수치지만, 여전히 6000여건을 웃돌고 있어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지난 2013년 서울시 여성 정책의 일환으로 서울교통공사가 일부 좌석을 임산부용으로 지정하며 도입됐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임산부가 좌석에 언제든지 앉을 수 있도록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를 권장하고 있으나, 도입 이후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는 임산부들의 목소리는 줄지 않고 있다.

32주차 임산부인 A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깜빡하고 임산부 뱃지를 안 달고 나왔지만 32주차라 배가 제법 나왔는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며 “오히려 임산부석이 없는 게 덜 속상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임산부 뱃지를 달고 지하철에 탑승했다는 B씨도 “임산부석에 앉은 사람들은 왜 다 눈을 감고 있느냐”며 “내 (임산부) 뱃지를 봐줄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1000명과 일반인 1000명을 상대로 한 ‘2024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조사’ 결과에서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드러난다.

임산부 배려석 이용 경험이 있는 임산부는 응답자 1000명 중 92.3%에 달했으나, 이중 57.6%가 불편을 느꼈다고 답했다. 불편을 느낀 이유로는 ‘일반인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서’가 73.1%를 차지했다.
서울교통공사 역시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시민 인식의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역사 내부와 운행 중인 열차에서 수시로 안내 방송을 실시하거나 관련 영상을 송출하고 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는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챌린지 이벤트’ 등을 실시해 홍보하거나, 중년층을 대상으로는 오프라인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자, 일각에서는 강제성 부여를 위해 임산부 착석 여부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로 광주 등 일부 지역 도시철도에서는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임산부 배려석에 음성 안내 기기가 부착돼 적외선 센서로 승객이 앉는 것을 감지한 뒤 스피커에서 안내가 나오는 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강제적 규정이 우선될 경우 불필요한 예산이 소요되고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자리 양보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는 시민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력한 조치는 필요해보인다”면서도 “정부의 강제적 규제보다는 시민 스스로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익광고 캠페인 등을 통해 시민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도 “미디어를 통해 자리양보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사회통합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SNS 등을 통해 임산부 자리 양보에 대한 캠페인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