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급 땅 굴착공사, 싱크홀 감지기도 없어… 소장은 “지반 좋다”[히어로콘텐츠/크랙中-②]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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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굴착공사 현장점검 동행해보니
계측기 설치 지점 제멋대로 바꾸고
붕괴 막는 버팀보 주변엔 설치 안해
점검단 “붕괴 조짐 모를수도” 지적
지하터널 공사장 바닥엔 물 가득
비용탓 방수 대신 배수… 안전 우려
현장선 “30년 작업했는데 문제없다”

동아일보와 한국지하안전협회는 지반, 지반침하 이력 등을 반영한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어 각 동의 안전등급을 1~5등급으로 분류했다. 5등급은 가장 안전도가 낮은 등급이다.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에 등록된 2018년 이후 서울 싱크홀 지점 132곳 중 90곳이 4, 5등급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 현재 진행 중인 지하 10m 이상 굴착공사(최근 1년 이내 완공된 곳 포함)는 총 196곳이었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올해 4월 서울의 한 지하차도 굴착공사 현장. 기둥과 땅이 맞닿는 곳에 일정 간격으로 설치됐어야 할 계측기가 안 보였다. 계측기란 지반이 움직이거나 변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장비로 지표침하계, 지중경사계 등이 있다. 점검을 나온 정부 안전 점검단 관계자가 “계측기는 어디 있나요?”라고 묻자, 현장소장은 “곧 설치할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점검단 관계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터파기 공사하기 전에 설치해야 하는 걸 모르느냐”고 되묻자, 현장소장은 “이 현장은 지반이 워낙 좋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동행한 이날 현장은 본보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에서 가장 안전도가 낮고 지반이 불안한 5등급 지역이었다.

올해 4월 정부가 굴착공사 현장점검애 나선 서울의 한 지하차도 공사장 입구에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둔 콘크리트 기둥 표면에 튀어나온 부분 일부는 점검단이 손가락을 갖다 대자 부서졌다. 히어로콘텐츠팀
●계측기 위치 제각각… 불편하다고 옮겨 달아

점검단은 공사장 입구에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콘크리트 기둥부터 살폈다. 표면에 균열이 보였다. 이곳 지반은 돌이 아니라 흙이 대부분이었다. 지반이 단단하면 시공이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토류판(흙막이 벽체)을 쓴다. 반면 지반이 붕괴되기 쉽거나 불안정한 곳은 콘크리트 기둥을 쓴다. 콘크리트를 타설해 벽을 세우는 방식으로, 시공이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이곳은 콘크리트 기둥이 있었다.

설계도상 흙막이벽 뒤에 설치했어야 할 계측기는 실제로는 약 6m 떨어진 도로 건너편 공터에 설치돼 있었다. 현장 담당자는 “원래 설치해야 하는 지점이 차가 다녀서 옮겼다”고 했다.

계측기 설치 지점을 마음대로 바꾸면 싱크홀 조짐을 감지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점검단 관계자는 “애먼 곳에 계측기를 설치하면 붕괴 조짐을 모를 수도 있다”고 했다.

설계상 계측기가 설치돼야 하는 지점(오른쪽 아래)과 실제 설치지점(왼쪽 위)이 2개 차로 넓이(약 6m) 떨어져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설계상 계측기 위치가 차도 위라 설치와 점검이 어려워 차도 옆 공터에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히어로콘텐츠팀
●붕괴 조짐도 감지 어려운데… 현장은 ‘무감각’

공사장 붕괴를 막기 위해 설치된 버팀보들 주변에도 계측기가 없었다. 흙더미가 누르는 하중의 변화를 측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바로 위에는 덤프트럭, 중장비 차량 등이 지나다녔다. 점검단은 현장 관계자들에게 “공사할 때 불안하지 않냐. 수천억 원을 쓰는 공사인데 계측기 비용 2억∼3억 원을 아끼느냐”고 지적했다.

히어로팀이 5월에 찾아간 경기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김태병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은 현장에 도착한 뒤 계측기 위치부터 확인했다. 흙막이 벽체 곳곳이 돌출되는 등 이상 징후가 보여서다. 현장 관리자는 반대편 벽면을 가리키며 “계측기는 저쪽에 설치돼 있다”고 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현장소장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하자 김 정책관은 “걱정이 된다. 최근 사망 사고가 난 굴착공사 현장들 돌아보면 소장님들은 다 ‘내가 30년 작업했는데 이렇게 해서 문제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비용 아끼려 방수 대신 배수… 공사장은 물바다

경기도 한 지하철 터널 굴착공사현장. 터널 가장자리 부분에 물이 고여있다. 터널 공사는 물을 완전히 막는 방수형과 들어오는 물을 펌프로 빼내는 배수형으로 구분되는데 배수형의 공사비가 더 저렴하다. 국내 도심지 터널의 90% 이상이 이렇게 물을 빼내는 방식을 택한다. 히어로콘텐츠팀
경기의 또 다른 지하철 노선 신설 현장은 배수 시설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히어로팀이 점검단과 함께 터널에 들어갔을 때 바닥엔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지하 터널 공사는 굴착공사 중에서 물 유입량이 가장 많다. 터널 주변을 전부 방수 비닐로 덮고 콘크리트를 많이 칠하면 물을 막을 수 있는데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현장은 이 방식 대신에 배수펌프로 물을 퍼내는 방식을 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한 굴착공사 분야 전문가는 “원래 지하안전법상 지하수 유출량이 설계에서 정한 3단계 관리 기준(안전-주의-위험) 중 위험 단계에 해당하면 공사가 중지됐다”며 “그런데 민원이 너무 많아서 유출량이 이 기준을 넘어도 공사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수 유출량이 기준치의 5배를 넘어도 그냥 공사하는 곳이 많다”며 “이런 현장 주변에서는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이 100개씩 나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대형 싱크홀이 왜 굴착공사장 주변에서 발생하는지, 그 과정과 원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로 소개합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25일 오전 3시 온라인 공개됩니다.

▶크랙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 보기
https://original.donga.com/2025/sinkhole2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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