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발달장애인 작가 13명 활동… 용산구 창작공간 ‘느루아트’ 오픈
예술치료 전문 강사와 함께 작업… 대기업과 계약, 작품-굿즈 판매도
성북-양천도 교육 프로그램 운영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전용 창작 공간 ‘느루아트’에서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문을 연 이곳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미술 수업은 물론,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밝은 색으로 겉을 감싸도록 칠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의 미술 작업실 ‘느루아트’에서 강사가 말했다. 이곳에서는 평일마다 특별한 그림 수업이 열린다. 이날 오후 1시에 찾은 1층 작업실에선 고요함과 소란이 오갔다. 이따금 손을 번쩍 들며 “으아” 소리를 내는 작가도 있었고, “저는 축구를 좋아해요”라며 강사에게 느닷없이 말을 건네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작가들은 조용히 캔버스에 집중하며 흰 배경을 색으로 채워 나갔다.
이곳에 모인 작가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느루아트 작업실은 발달장애인 미술 작가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이날도 발달장애인 작가들은 서너 명씩 테이블에 둘러앉아 예술치료 전문 강사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강사가 “나뭇잎을 뾰족하게 그려 볼까요?”, “눈동자는 더 진하게 해주면 어때요?”라고 말하면, 작가들은 익숙한 듯 붓을 바꿔 가며 자신의 그림을 완성했다.
●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해
느루아트는 용산구가 지난달 20일 문을 연 창작 공간이다. 발달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돕고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조성됐다.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미술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중요한 창구다.
‘느루아트’라는 이름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오래도록’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느루’에서 따왔다. 비장애인보다 느리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발달장애인들의 미술 세계를 상징한다. 이 공간은 원래 서울시 소유의 유휴공간이었으며, 주민 공용주방 등으로 쓰이던 장소를 리모델링해 새롭게 조성됐다.
현재 20대 발달장애인 작가 13명이 이곳에서 활동 중이다. 일부는 포스코 등 기업과 계약을 맺고 전시 작품이나 굿즈(기념품) 제작을 함께 한다. 기업들은 장애인 의무 고용 및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협업하고 있다.
작업실 1층 작은 전시 공간에는 곰 인형, 꽃 등이 그려진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벽과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만화 캐릭터, 태양 등 자연물이 그려진 작품들이 수납장과 삼각대 위에 정돈돼 있었다.
하반기(7∼12월)부터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수업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예술 공간으로도 확장된다. 주민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전시에 참여하고, 발달장애인 작가들이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프로그램도 운영될 예정이다.
정정애 느루아트 대표(서울장애인부모연대 용산구지회장)는 “단순한 예술 교육을 넘어, 발달장애인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지역과의 접촉을 통해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장소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사회 참여 지원하는 자치구들
최근 서울 자치구마다 발달장애인과 지역사회의 소통을 돕는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성북구 동선보건지소는 ‘신나는 K-POP 댄스 배우기’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발달장애 청년의 신체활동과 정서적 안정을 돕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이 인기 가요에 맞춰 간단한 동작으로 춤을 추며 협응력과 균형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 외에도 발달장애 성인을 대상으로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로부터 배드민턴 지도를 받는 프로그램,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미술 활동과 난타 수업 등도 운영 중이다.
양천구는 양천해누리복지관을 통해 40세 이상 중장년 발달장애인을 위한 ‘열린 교실’을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체육 수업과 여가활동 지원 등이 이뤄지며, 발달장애인이 낮 시간 동안 지역사회와 연결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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