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백답·‘에겐테토’·소수정예 수업 통해 자아 탐색
“일상 경험 통한 자기탐구 중요…과몰입 금물”
2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D홀에서 열린 ‘K-일러스트레이션페어 서울’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5.2.6/뉴스1
“제가 쓴 열 개의 백문 백답(100문 100답)을 읽다 보면, 나다운 답변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취업 준비생 강진서 씨(25)는 ‘백문 백답’을 10번 넘게 작성했다. 강 씨는 과거 자신의 성격, 성향, 가치관을 시간이 지나 확인하고 싶어 백문 백답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거쳐 온 백문 백답을 통해 변화하는 내 모습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의 ‘에겐 테토 테스트’ 관련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처
블로그를 운영하는 직장인 김민희 씨(29)는 백문 백답 질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사랑과 우정의 차이점’, ‘타임머신을 탄다면 가고 싶은 시간과 장소’를 꼽았다. 그는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새삼 생각해 볼 수 있었다”라고 했다.
최근 MZ 세대(밀레니엄+Z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을 스스로 탐색하고 분석하는 ‘셀프디깅(Self-digging)’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셀프디깅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을 통해 타인을 주목하던 기존 유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관, 성격, 외모, 취향 등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백문 백답뿐만 아니라 ‘에겐 테토 테스트’가 유행하며 또 다른 셀프디깅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이 테스트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섬세한 성향을 빗대는 단어로 칭하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외향적인 성향을 일컫는 말로 사용한다. ‘에겐녀’, ‘테토녀’, ‘에겐남’, ‘테토남’ 중 하나로 개인의 성향을 분류하고, 이를 연애 방식과도 연관 지어 자신을 해석해 본다는 취지다. 앞서 유행해왔던 MBTI 성격 유형 검사, ‘퍼스널 컬러’는 셀프디깅 콘텐츠의 시초였다.
네이버 ‘원데이 클래스’ 검색화면 캡처
자신을 파고들며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면서 소비 흐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소수 정예 만들기 수업을 운영하는 각종 공방들에서 주말마다 마감 행렬이 이어지는 현상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무 반지 만들기, 베이킹, 유리컵 만들기 등 소수 수업을 수강해온 박수연 씨(24)는 “나무 반지 만들기 수업에서는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도구들을 처음 사용해 봤는데 내가 만들기를 생각보다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앞으로도 비슷한 경험들을 계속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과도하게 들여다보며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셀프디깅 열풍으로 번진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유행하는 셀프디깅 콘텐츠를 건강하게 소비하기 위해서는 일상 경험 속에서 객관적인 자세로 본인을 탐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일 뉴스1과 통화에서 “인생은 자기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며 “셀프디깅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과하게 몰입하거나 강박이 돼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정하는 기준에 빗대어서 자기를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경험들을 통해서 자신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찾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셀프디깅을 한다면서 자신 안으로만 파고들다 보면 본인을 너무 주관화하게 된다”라며 “본인을 스스로 객관화해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