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찾아 아픈 아이는 전국 떠돈다”…위기의 소아외과

  • 뉴시스(신문)
  • 입력 2025년 7월 6일 0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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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의료소송 고위험·저수가 대 끊길 위기
소아외과 수술 난이도·중증도 높아도 저수가
고난도 소아수술 수가 신설·중증도 세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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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장중첩증이면 전국을 떠돌 수 있다는 우려 자체가 향후 10년간 위기의 시그널입니다.”(남소현 부산백병원 소아외과 교수)

“소아청소년 외과계 수술은 성인에 비해 난이도와 중증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수가는 낮게 책정됩니다.”(박문석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저출산으로 인한 소아청소년 환자 수 급감, 높은 의료소송 위험, 만성적인 저수가로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정형외과·소아신경외과 등 소아청소년 외과 계열 전문의의 대(代)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 소아 외과계열 수술은 난이도와 중증도가 성인에 비해 높고 인력과 장비도 많이 투입되지만 수가는 크게 낮아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남소현 대한소아외과학회 기획위원장(부산백병원 소아외과 교수)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 2025 심포지엄’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만 아플 때 정작 진료해 줄 의사가 없다”면서 “지금 전라남도에서 장중첩증 진단을 받으면 전국을 떠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주로 소아에서 발생하는 응급질환인 장중첩증은 장의 한 부분이 인접한 다른 부분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적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장 괴사와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고 심한 경우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각 학회에 따르면 소아비뇨의학과(29명)·소아흉부외과(33명)·소아외과(50명)·소아마취과(92명)·소아정형외과(41명)·소아안과(102명) 전문의 수는 2023년 기준 총 347명으로, 전체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약 5.5%에 불과하다.

소아청소년 외과계열 전문의가 씨가 마르고 있는 것은 저출산으로 인한 소아청소년 인구 급감으로 환자 수 자체가 줄어든 데다 소아외과계 질환은 중증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저수가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아외과 계열 전문의 수가 적은 가운데 24시간 당직체제 유지, 야간·주말 호출 대기 등으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도 주요인이다. 특히 10억대 배상판결 등 높은 의료소송 리스크는 소아청소년 외과 세부 분과를 기피하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소아청소년 외과계열 전문의의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최미영 충북대병원 소아안과 교수는 “안과의 특성상 사시가 있는 경우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수술 후 재발할 수 있어 10년 이상 추적 관찰해야 하는데, 소아안과 전문의의 3분의2 이상이 서울·경기에 있어 큰 문제”라면서 “저를 포함해 충청 이남 지역 선생님들은 ‘내가 나가면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실제 각 학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소아안과 전문의의 68% 가량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소아마취과의 경우 70%, 소아흉부외과는 67%, 소아정형외과는 59%, 소아외과는 56%, 소아비뇨의학과는 48%로 집계됐다. 특히 소아신경외과 전문의는 전국에 9.5명 뿐인데 이마저도 모두 서울의 대형병원 소속이다.

소아 외과계열 수술 수도권 쏠림 현상도 큰 문제다. 임영재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비뇨의학과 부교수(대한소아비뇨의학회 교육수련이사)는 “서울에 있는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 비중은 약 40%이지만, 서울에서 시행되는 수술 비율은 전체의 50% 이상 가량에 달하고 특정 수술의 경우 80% 이상 시행된다”고 말했다.

인력과 수술의 수도권 쏠림과 함께 의료 인프라 부족은 지방의 전공의 수련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 부교수는 “소아 전용 병상과 특수 수술 장비와 재료 등에 대한 투자가 부족해 수련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아 전용 수술실은 서울대어린이병원 외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대부분 소아 복강경 장비와 C-arm(실시간 방사선 영상장치) 부족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외과계열의 높은 중증도를 반영한 수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부터 고위험군이나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연령별 수술 수가 가산이 시행되고 있지만 저수가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남승민 순천향대 부천병원 성형외과 교수(대한두개안면성형외과학회 기획이사)는 “같은 질병이어도 소아는 연령, 체중, 생리적 특성, 마취 위험도, 수술시간 등이 성인과 달라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면서 “연령, 체중, 동반기형 유무 등에 따라 소아의 경우 수술 위험도가 높고 인적·물적 자원도 더 많이 투입되지만 수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문석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총무)는 “수술명에 의해 수가와 중증도가 결정돼 고난도 소아 중증 환자는 수술 수가도 낮고 중증도도 낮게 측정된다”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소아 진료가 위축되지 않도록 중증 소아환자 비율 등을 높이면 상급종합병원 지정 시 우대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고난도 소아외과 수술수가 삭감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곽재건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부교수(대한선천성심장외과연구회 총무)는 “소아청소년 고난도 수술은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가를 요구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삭감되고 있다”고 했다.

소아마취과 전문의는 응급·고위험 수술 등 소아 외과 수술에 꼭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아의 특성상 마취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지만 수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장영은 서울대병원 소아마취통증의학과 교수(대한소아마취학회 총무이사)는 “국내에서 전체 소아마취 진료량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소아마취 전문의는 총 19명이고 이 중 소아심장마취 전문의는 15명 수준”이라면서 “이렇다 보니 계획된 중증·희귀 소아 수술이 있는데 전날 갑자기 어떤 환자가 전원 오게 되면 있던 수술이 취소되고 전원 환자를 수술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소아마취를 기피하는 이유 중 70% 이상이 고난도·고위험으로 꼽히지만 마취 위험도가 수가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유럽에서 소아 20명 중 1명꼴로 마취 후 합병증이 생길 정도로 마취는 간단하지 않지만, 수가가 낮다보니 300% 가량 가산해도 일본의 기본 수가인 70만 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윤영 사직 전공의(NextGen Pediatrics 총무)는 “(6세 이하에서) 최소 300% 이상 진료 수가 파격 인상, 지역을 고려한 수가 차등 적용, 고난도·고위험 진료 수가 반영 등이 필요하다”면서 “고갈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 외에 단기적으로 저출산 대책 예산의 약 10%를 활용하면 6조 원 정도 확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고난도 소아 응급 수술 대기 인력 등을 고려해 고난도 소아 수술 수가를 별도로 신설하고 중증도 기반의 세분화된 수가가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상대가치 점수(진료비·의사 업무량·위험도 등을 기준으로 한 의료행위별 가치 평가) 개편도 필요하다”고 했다. 주로 생후 1년 내 수술하는 안면 선천성 기형은 수술 자체가 위험한 데다 수차례 필요한 재수술의 난이도는 더 높다.

정부는 중증도를 반영한 소아청소년 외과계열 수가를 마련할 방침이다. 권민정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정책과 과장은 “(소아청소년 외과계열) 진료의 중증도가 가장 중요한 만큼 수가 개편의 일환으로 중증도 질병분류 기준을 행정예고했다”면서 “환자분류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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