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4명 앗아간 하천, 얕아 보여도 아찔한 급경사-급물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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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 사망 62% 강-계곡서 발생
바닥 지형 불규칙, 갑자기 깊어져
“수심 얕은데 뭘” 금지구역서 수영
전문가 “강-계곡 별도 안전법 필요… 처벌조항 강화해 무단입수 막아야”

충남 금산군 원골유원지에 수영 금지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9일 이곳을 방문한 20대 4명은 물놀이를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모두 숨졌다. 금산=뉴스1
충남 금산군 원골유원지에 수영 금지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9일 이곳을 방문한 20대 4명은 물놀이를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모두 숨졌다. 금산=뉴스1
“사망 소식은 듣긴 했지만, 우리는 얕은 곳에서만 있어서 괜찮아요.”

10일 오전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교 다리 아래 금강에서 다슬기를 잡던 60대 부부가 말했다. ‘괜찮다’는 부부의 말과 달리 강가 주변에는 ‘다슬기 채집 금지’, ‘물놀이 사망사고 발생 지점’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부부 외에도 여러 명이 강 안으로 들어가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인근에 안전요원이 배치돼 있었지만, 물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이곳은 전날 물놀이를 하던 20대 남성 4명이 실종된 장소다. 실종자들은 모두 그날 밤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숨졌다. 전문가들은 물놀이철 대부분의 사고가 강과 계곡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물놀이 사망 62% 강·계곡에서 발생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19분경 20대 남성 4명이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다 실종됐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이들은 오후 8시 46분부터 오후 9시 53분 사이 차례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모두 숨졌다.

사고 지점은 수심이 깊은 물놀이 금지 구역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일대는 2011년부터 금산군이 ‘입수 금지 구역(위험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지난달 3일에도 50대 여성이 이곳에서 다슬기를 채취하다 물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고가 반복되자 금산군은 안전부표를 설치해 물놀이 허용 구역과 금지 구역을 구분해 놓았다. 20대 남성 4명은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10일 기자가 사고 현장을 찾아가 보니 하천 바닥이 훤히 보이는 얕은 구간도 있었지만, 짙은 녹색을 띠며 누가 봐도 수심이 깊어 보이는 곳도 눈에 띄었다. 물은 잔잔히 흐르는 듯했지만 일부 지점에선 물살이 좌우로 갈라지며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거나 빠르게 흐르기도 했다.

물놀이객들이 사고 지점 인근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착용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강이나 계곡은 바다보다 좁고 수심이 얕아 보이기 때문에 ‘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놀이 사고 사망자의 대부분이 강과 계곡에서 발생한다. 행정안전부 재난연감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4년)간 물놀이 사고로 총 140명이 사망했다. 이 중 계곡이 45명(32%)으로 가장 많았고, 하천(강) 42명(30%), 해수욕장 33명(24%), 바닷가(갯벌·해변) 20명(14%) 등의 순이었다. 강과 계곡에서 숨진 사람이 전체의 62%에 달하는 셈이다. 사망 원인을 보면 수영 미숙이 36%, 구명조끼 미착용 등 안전 부주의가 33%, 음주 수영이 17%로 나타났다. 대부분 사전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강과 계곡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하천이나 계곡은 수심이 얕아 보여도 바닥 지형이 불규칙해 갑자기 깊어지거나 유속이 빠른 구간이 많다”며 “바다보다 수온도 5∼10도 낮아 여름철에도 물속에 오래 있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저체온증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사고 당일 근무일지엔 ‘사고 無’

강과 하천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안전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관리 모두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수욕장의 경우 ‘해수욕장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안전요원 배치, 동력 구조장비 구비, 감시탑 설치 등 기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계곡과 하천 등 내수면은 별도의 법령이 없어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사고 당일 근무일지에 따르면, 안전요원 2명이 ‘홍보 방송 6회, 순찰 5회, 질서 유지 2회, 안전장비 점검 1회’를 실시했다고 적혀 있었다. 근무일지는 오후 7시에 제출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인명 사고’ 항목에는 단속 내용이나 사고 관련 특이사항은 기재돼 있지 않았다. 더욱이 안전요원들이 전날 사고를 당한 4명에게 한 차례 경고를 했지만, 이후 30분간 물놀이가 계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채 교수는 “지자체의 자율적인 관리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내수면 안전에 대한 별도 법과 기준을 마련해 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며 “동시에 금지 구역 무단 입수 등에 대한 처벌 조항도 현행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놀이 사고#강·계곡 위험#안전요원#사고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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