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극장]
올 상반기 관객 4249만명 그쳐
‘잘나간’ 영화들도 300만명대 수준… 천만영화 부재속 타개책 마련 막막
국내 점유율 2, 3위 합병 추진에도… “OTT 대응전략 빈곤, 시너지 의문”
13일 오후 5시 반경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 ‘극성수기’라 불리는 7월 휴일 저녁인데도 관객들이 드문드문해 한산한 분위기가 물씬했다. 올해 상반기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4249만여 명으로 20여 년 만에 최악의 불황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주말 저녁이던 이달 6일 오후 6시경.
서울 도심 중심가에 있는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은 한산하다 못해 허전했다. 이날 예매율 1위인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상영 10분 전임에도 입장 관객은 마흔 명 남짓했다. 영화계 극성수기로 꼽히는 7월에 들어선 분위기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최근 상당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영화 ‘F1 더 무비’조차 개봉 3주째 누적 관객 수가 130만 명(12일 기준)에 그치고 있다.
심각한 불황에 빠진 국내 극장가가 좀처럼 회복세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올 상반기 영화관 총 관객 수는 4200만 명대. 팬데믹 시기(2020, 2021년)를 제외하면 21년 만에 최저치다. 이에 영화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연 관객 1억 명’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2, 3위 기업이 합병을 추진하는 등 극장가에선 피 말리는 ‘생존 게임’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신규 투자가 불확실한 데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파급력은 갈수록 커져 분위기를 반전할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총 4249만여 명이다. 2004년 상반기(약 2182만 명)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앞서 국내 영화 관람객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연속 2억 명을 넘었다가 팬데믹 영향이 심각했던 2020∼2021년 평균 6000만 명으로 줄었다. 그러다 2022년 1억1280만 명으로 회복한 뒤 3년 연속 1억 명을 넘겼다. 하지만 올해 이런 흐름이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다시 1억 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극장가에선 이런 하락세의 주요 원인으로 ‘천만 영화’의 부재를 꼽는다. 팬데믹 이후 국내 영화산업이 지지부진하긴 했지만, 흥행작은 꾸준히 있어 왔다. 2022년에는 ‘범죄도시2’와 ‘아바타: 물의 길’이, 2023년엔 ‘범죄도시3’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모았다. 지난해에도 상반기에만 ‘범죄도시4’와 ‘파묘’가 각각 1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유치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는 가장 ‘잘나간’ 영화들조차 300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상반기 1∼3위 영화는 ‘야당’(337만 명)과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336만 명), ‘미키17’(301만 명)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중박’ 정도로 취급되던 숫자다. 이에 상반기 영화시장 매출은 약 4079억 원에 그쳤다. 같은 시기 공연시장 매출액(7413억 원)의 약 55%로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 영화관 합병, 득일까 실일까
극장가의 위기는 업계 분위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국내 영화관 시장 점유율 2, 3위인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이 합병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양 사는 올 5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2026년 2월까지 합작법인을 세워 대주주인 롯데쇼핑과 콘텐트리중앙이 공동 경영할 방침이다.
현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양 사 합병 건에 대한 사전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전협의란 정식 기업결합 신고 전 자료를 미리 제출해 공정위가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 합병이 성사되면 이들은 전국 1688개(921개+767개)의 스크린 수를 가진 거대 사업자가 된다. 산술적으론 현 시장 점유율 1위인 CGV(1329개)를 넘어선다.
하지만 영화계에선 이번 합병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고 있다. 한 영화투자사 관계자는 “합작법인을 통해 놀고 있는 상영관이 정리되고 극장가가 내실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영화배급사 관계자는 “유통 창구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기회적 측면에서 유리하다”며 “양강 구도가 되면 다양한 콘텐츠가 더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합병이 극장가의 분위기 전환을 이끌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단 신규 투자 유치가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상당하다. 양 사는 합작법인의 부채비율을 줄이고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4000억 원 상당의 자금 조달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러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은 “영화산업 자체에 비관적이어서 선뜻 투자할 투자처가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합병을 하더라도 ‘영화관 정리’는 또 다른 난관이다. 점포들을 정리해 사업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데, 일반적인 영화관은 10∼30년 단위로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다. 계약 해지 시 위약금 부담이 큰 데다 구조상 용도 변경도 어렵다. 롯데시네마는 전국 점포 중 1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메가박스는 모든 점포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OTT의 약진에 대응할 전략이 부재하단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OTT 이용률은 79.2%다.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이 OTT를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국내 영화관 시장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단순 합병만으론 지속적으로 생존을 보장하긴 어려운 구조란 분석이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젠 영화관끼리가 아니라 OTT-영화관 경쟁으로 구도가 바뀌었다”며 “합작법인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합병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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