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비닐하우스 농장 가보니
내부 온도 42.8도… 숨쉬기 힘들어
오이 생육 적정 25도 훨씬 웃돌아
수확 시기 놓치면 상품성 떨어져… “현장 방문해 실질적 대책 마련을”
“출하 시기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이런 폭염에도 일을 해야 합니다.”
비닐하우스 내부가 42.8도를 기록한 모습. 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13일 오전 11시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서 만난 농업인 이종대 씨(67)는 오이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얼음물로 목을 축이며 이렇게 말했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강한 햇볕 탓에 숨 쉬기 버거울 정도로 더웠다. 휴대전화로는 폭염 안전 수칙을 지켜 달라는 내용이 담긴 안전안내문자 메시지가 울렸다. 이날 아산 지역 최고기온은 35도였다. 하우스 내부의 기온은 42.8도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13일 충남 아산 지역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한 가운데 이종대 씨가 메마른 오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정훈 기자 jh89@donga.com길이 100m, 폭 15m 정도 되는 하우스엔 초록색 오이 잎사귀가 가득 차 있었는데, 가까이서 확인해 보니 노란빛으로 변색됐거나 축 늘어져 있었다. 잎사귀 사이에 있는 오이는 메말라 있었다. 통상 중부지방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오이는 1월 파종을 시작해 3월부터 7월 말까지 수확 작업을 진행한다. 이 씨는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지금 오이를 따야 한다”면서 “폭염으로 오이 생육이 이뤄지지 않는 등 이미 상당한 피해를 보았지만 남은 오이라도 수확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 씨는 한때 연 매출 4억 원가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여름철 폭염 피해로 기존 매출 대비 1억∼2억 원가량 손실을 보고 있다고 했다.
오이 생육을 위한 여름철 적정 온도는 20∼25도라고 한다. 그러나 하우스 내부 온도가 40도가 넘는 이 씨 농장엔 냉풍기와 급수 장치 등이 설치돼 있었음에도 가동되진 않고 있었다. 이 씨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기 위해 수천만 원을 들여 각종 시설을 설치해 봤지만 내부 온도를 2도가량 떨어뜨릴 뿐이었다”며 “전기요금도 문제다. 농업용 전기를 사용하는데, 10년 전만 해도 월 100만 원 정도 내던 요금은 최근 2배가량 올라 각종 장치를 사용하는 데도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인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62)도 상황은 매한가지다. 김 씨는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일하기 때문에 햇빛을 그대로 받는다. 올해 폭염과 가뭄까지 겹치자 김 씨는 말라버린 사과나무 잎사귀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폭염이 더 이어진다고 들어서 걱정이 많다”며 “그러나 날씨를 탓할 때가 아니다. 올해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선 계속해서 과수원에 나와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온열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어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아산시는 여름철 고온다습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농업인을 보호하기 위해 ‘보텍스 튜브형 에어 냉각조끼’를 농민 일부에게 보급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극한 폭염 대비 온열질환 예방 신기술 보급사업’의 하나로 올해 처음 지급됐는데, 농민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씨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농민들을 위해 다양한 것을 보급해 주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본다”며 “다만 고령 농민들이 이를 활용하거나 잘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농업 현장에 방문해 실질적으로 어떤 게 필요한지 직접 확인하고, 맞춤형 대책을 세워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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